전직 블랙요원, 국세청 저승사자 되다1회차

1회차 · 해피

슬리퍼 신은 팀장님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곳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교도소나 법정을 떠올리겠지만, 여의도와 강남의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은 주저 없이 다른 이름을 댔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기업의 저승사자, 국세청의 칼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격언을 물리 법칙 수준으로 증명해 내는 잔혹한 부서.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재벌 총수든 정계 거물이든 심장 밑바닥부터 얼어붙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슬 퍼런 전설도 오늘만큼은 잠시 옅어져 있었다. 공채 신입 세무공무원들의 첫 부서 배치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복도에는 갓 다림질한 뻣뻣한 정장 차림의 신입들이 각 잡힌 군인처럼 굳은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선배 조사관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피하느라 신입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조사4국 3팀 사무실 안.

단정한 감청색 정장에 은테 안경을 콧등에 걸친 7급 조사관 차유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시계를 흘끔 보았다. 초침이 오전 아홉 시를 갓 넘어서고 있었다.

"강 반장님, 오늘 신입들 상태 좀 보셨어요?"

맞은편 파티션에서 낡은 서류철을 정리하던 6급 베테랑 강철웅 조사관이 혀를 찼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굵직한 팔뚝을 지닌 그는 조사4국에서만 십 년을 굴러먹은 산증인이었다.

"봤지, 봤어. 다들 병아리마냥 눈만 껌뻑이고 있더구먼. 우리 3팀에 배속될 놈은 도대체 누군지 몰라도 첫날부터 아주 단단히 군기를 잡아야 해. 지난달에 나간 박 주임 빈자리가 얼마나 큰데, 어리바리한 놈 들어오면 우리만 야근 폭탄이야."

"안 그래도 지난번 대형 프랜차이즈 기획 조사 서류가 산더미인데 걱정이네요. 게다가 우리 팀장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잖아요. 위에서 낙하산이 내려온다는 둥, 본청에서 에이스가 꽂힌다는 둥 흉흉한 소문만 돌고."

"팀장이야 국장님이 알아서 윗선이랑 조율하겠지. 일단 우리 손발 맞춰서 일할 싹싹한 막내 녀석이나 제대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눈치 빠르고, 복사 잘 뜨고, 커피 잘 타는 놈으로."

드르륵.

그때, 3팀 사무실의 유리문이 열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출입구를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인영을 본 순간, 차유진과 강철웅은 물론이고 사무실에 있던 다른 팀원들까지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키는 족히 185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훤칠한 체격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슬림하면서도 단단한 역삼각형 몸매는 웬만한 모델 뺨을 칠 정도였다. 이목구비는 더욱 기가 막혔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에 날렵한 턱선, 짙은 눈썹 아래 자리 잡은 호수처럼 깊고 서글서글한 눈매. 화면을 뚫고 나온 아이돌 센터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독보적인 미남이었다.

하지만 감탄은 딱 3초 만에 깨졌다.

그의 차림새 때문이었다. 비싼 원단으로 보이는 명품 셔츠는 단추를 두 개나 풀어헤쳐 쇄골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넥타이는 헐렁하게 매달려 바람결에 덜렁거렸다. 심지어 발밑에는 국세청 로고가 박힌 정체불명의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었다.

손에는 달랑 편의점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청년은 두리번거리며 사무실 안을 훑더니, 특유의 능청스럽고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3팀으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사무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강철웅이 헛기침을 큼큼 내뱉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오늘이 신입 공채 배치일인 데다, 차림새는 날라리 같아도 얼굴에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것 같은 청년의 외모를 보니 의심할 여지 없는 '신입'이었다. 게다가 저 건방진 슬리퍼 꼬락서니라니.

강철웅이 서류철을 탁 내려놓으며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신입. 자네가 오늘 우리 팀에 새로 온다는 친구인가?"

"아, 네! 맞습니다. 신동혁이라고 합니다."

동혁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는 뻔뻔한 태도에 차유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원리원칙을 목숨처럼 여기는 차유진에게 첫 출근부터 단추를 풀고 슬리퍼를 끄는 신입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차유진이 안경을 고쳐 쓰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신동혁 씨? 국세청 신입 기본 소양 교육 때 복장 단정 규정은 안 배웠나요? 넥타이는 삐뚤어졌고 슬리퍼는 또 뭐죠? 여기가 동네 피시방인 줄 아십니까?"

"아하하, 오는 길에 구두 뒤축이 부러지는 바람에 급하게 슬리퍼로 갈아 신었습니다.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발에 땀이 많아서 통풍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요."

동혁은 넉살 좋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혼이 나면서도 기죽기는커녕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모습에 차유진은 기가 찼다.

강철웅이 팔짱을 끼며 신입 길들이기에 나섰다. 장난섞인 커피 심부름이었다.

"거 신입이 배짱 하나는 두둑하네. 좋아, 인사치레는 이쯤 하고. 저기 탕비실 보이지? 선배들 목마르니까 믹스커피나 한 잔씩 싹 타 와 봐. 비율 알지? 둘둘둘. 유진이는 설탕 하나만 빼고."

"오, 커피 심부름입니까? 제가 또 군대에서 황금비율 제조기로 명성을 날렸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동혁은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탕비실로 쏙 들어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동혁은 커다란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 세 개를 받쳐 들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선배들의 책상 위에 하나씩 커피를 내려놓았다.

신동혁은 자리의 이름표를 쳐다보고는 취향에 맞게 착착 대령했다.

"자, 여긴 강 반장님 취향 저격 둘둘둘. 이쪽은 차 조사관님 맞춤형 저당 커피입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강철웅이 종이컵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다.

"흠, 뭐… 손재주는 있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서른은 넘어 보이진 않는데."

"아, 올해 서른둘입니다."

"서른둘? 거 나이도 딱 좋네. 내가 서른다섯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요즘 신입들은 빠릿빠릿한 맛이 없는데, 자네는 싹싹해서 마음에 드는구먼. 그래, 자네 자리는 저기 복사실 앞 구석자리 치우고 앉으면…"

강철웅이 손가락으로 출입문 옆의 가장 좁고 컴컴한 말단 자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동혁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탕비실에서 들고 온 자기 몫의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사무실 정중앙 창가 쪽에 위치한 가장 크고 넓은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팀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상석이자, 전임 팀장이 떠난 이후 줄곧 비어 있던 자리였다.

털썩.

동혁은 그 거대한 가죽 의자에 깊숙이 엉덩이를 묻고 앉았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긴 다리를 꼬아 올리며 만족스러운 탄성을 내뱉었다.

"캬, 의자 쿠션감 죽이네. 햇볕도 잘 들고."

사무실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영하 수십 도로 곤두박질쳤다.

차유진의 손에 들린 볼펜이 딱 멈췄고, 강철웅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야, 야! 신동혁! 너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앉아!"

강철웅이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거긴 팀장님 자리야, 이 정신 나간 신입 놈아! 당장 안 내려와?!"

차유진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이라도 상사의 자리에 발을 올리고 앉는 짓은 국세청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형 사고였다.

"신동혁 씨! 장난칠 곳이 따로 있지, 첫날부터 직속 상관 자리에 앉아서 뭐 하는 짓이에요? 당장 일어나서 구석 자리로 가세요!"

그러나 동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랍 안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아크릴 명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안경 닦는 천을 꺼내 명패를 슥슥 닦기 시작했다.

명패의 먼지가 걷히자, 금빛으로 또렷하게 새겨진 글자가 드러났다.

[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3팀장 신 동 혁 ]

"아, 커피 맛 좋네요."

동혁이 명패를 책상 모퉁이에 툭 내려놓으며 싱긋 웃었다.

"말씀이 좀 늦었습니다. 오늘 자로 서울청 조사4국 3팀장으로 특별 채용되어 부임한 신동혁 사무관입니다. 제가 나이는 좀 어리지만, 계급은 5급이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강 반장님? 차 조사관님?"

"……?!"

쿵!

강철웅의 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유진은 들고 있던 결재 서류철을 손에서 놓쳤다. 서류 더미가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서른둘.

고시 출신 엘리트들도 지방청을 전전하며 기를 펴기 힘든 나이에, '서울청 조사4국의 팀장' 자리를 꿰찼다고?

강철웅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자기가 방금 전까지 '신입 놈'이니 '말 놓겠다'느니 하며 커피 심부름을 시켰던 상대가 바로 자신의 직속 상관이자 팀장이었던 것이다.

"팀… 팀장님?! 서, 설마 진짜 팀장님이십니까?!"

"네, 진짜 팀장인데요. 앞으로 커피는 방금 드신 비율로 가져오시면 됩니다. 강 반장님."

"아, 아닙니다! 제가 눈이 삐어서… 아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강철웅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식은땀을 비오듯 흘렸다.

차유진은 경악과 혼란 속에서 모니터의 인사 발령 시스템을 급하게 두드렸다. 시스템 화면에는 방금 전 갱신된 인사 정보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3팀장 5급 사무관 신동혁]

진짜였다. 가짜나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서른둘에 5급 특채로 조사4국 팀장이라고? 대관절 이 인간의 정체가 뭐야? 아무리 망해가는 팀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야?'

차유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점심시간 직전, 조사4국의 사내 메신저 비밀 대화방은 신동혁의 이야기로 폭발 직전이었다.

[강철웅: 야, 유진아. 진짜 저 인간 누구냐? 국세청 역사상 서른둘에 조사4국 팀장으로 꽂힌 전례가 있어?] [차유진: 없어요. 아예 유례가 없는 특채예요. 공채 출신도 아니고, 행시 출신도 아니에요. 인사 기록 카드를 열어봤는데 대부분이 '대외비'로 잠겨 있어요.] [강철웅: 대외비?!]

팀원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본청과 지청을 가리지 않고 국세청 바닥의 찌라시망이 무섭게 가동되었다.

'저 사람, 17세에 과학고 조기 졸업하고 20세에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3년 만에 수석 졸업했다더라.'

'에이, 말이 되냐? 내가 들은 소문은 달라. 국군정보사령부 특수부대 출신이라던데? 북파 공작원 출신이라는 썰도 있어.'

'아니다! 국정원 해외정보국 블랙 요원이었다가 신분 세탁하고 국세청으로 넘어온 거라더라!'

'무슨 영화 찍냐? 다 헛소리고, 사실은 청와대 민정수석 숨겨진 조카라더라. 아니면 고졸 출신 조폭 깡패인데 윗선 뒷돈 세탁해 주다가 낙하산으로 꽂힌 거라는 소문도 있어.'

온갖 황당무계한 찌라시가 난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