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블랙요원, 국세청 저승사자 되다2회차

2회차 · 해피

성북동 요새 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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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어색함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강철웅은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간신히 걸친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고, 차유진은 모니터 뒤에 숨어 힐끔힐끔 팀장석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정작 이 모든 소동의 원흉인 신동혁은 세상 편한 자세로 가죽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책상 위에 삼선 슬리퍼를 얹은 채, 국세청 인트라넷이 아니라 배달 앱 화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모습은 도무지 5급 사무관의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흠, 유진 씨. 이 근처에 탕수육 시키면 군만두 서비스로 주는 데가 어디예요?"

"……네? 지금 그걸 물으시는 겁니까?"

차유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안경을 치켜올렸다.

"팀장님, 첫 출근 날부터 배달 앱을 뒤지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3팀에 배당된 악성 체납자 파일만 서른 건이 넘어요. 전임 팀장이 싸질러 놓고 간 똥을 치우려면 오늘 밤샘 야근도 모자랍니다."

"에이,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세금 징수도 탄수화물이 들어가야 머리가 도는 법이죠. 그리고 공무원이 법인카드 한도 내에서 복리후생을 알차게 챙겨 먹는 건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이라고요. 강 반장님, 여기 '황궁반점' 탕수육 쿠폰 열 개 모으면 진짜 탕수육 소(小)자 공짜로 줍니까?"

강철웅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아, 예! 팀장님! 황궁반점은 열 장 모으면 탕수육 군만두 세트로 바꿔줍니다! 제가 아주 잘 압니다!"

"거봐, 역시 10년 차 베테랑은 정보력이 달라. 강 반장님, 앞으로 점심은 무조건 중식으로 통일합니다."

차유진의 관자놀이에 푸른 핏대가 돋았다.

'미치겠네, 정말. 카이스트니 정보사령부니 국정원 블랙 요원이니 하던 소문은 대체 누가 퍼뜨린 거야? 그냥 세금 축내는 날라리 월급루팡이잖아!'

차유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툼한 황토색 서류철 하나를 동혁의 책상 위에 쾅 내려놓았다.

"탕수육 쿠폰은 퇴근 후에 모으시고요, 팀장님. 당장 오늘 처리해야 할 긴급 안건입니다. 국장실에서 직접 내려온 특별 관리 대상자예요."

동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슬리퍼를 책상에서 내렸다.

"오호, 국장님이 친히 우리 3팀을 챙겨주셨다? 어디 볼까."

서류철 표지에는 붉은색 도장으로 '고액·상습 체납자 특별관리'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체납자: 오창선 (52세) / 직업: 전(前) 창성파이낸스 대표, 현 가상자산 투자 컨설턴트] [총 체납액: 국세 및 지방세 포함 총 284억 7,000만 원] [체납 사유: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양도소득세 포탈, 해외 가상자산 불법 환치기 수익 은닉] [특이사항: 본인 명의 재산 0원. 주민등록상 거주지는 보증금 500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 그러나 실제로는 성북동 80억 상당의 고급 호화 단독주택에 거주 중. 사설 경호원 10여 명을 고용해 국세청 체납추적팀 진입을 물리적으로 결사 저지.]

서류를 훑어보던 강철웅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으악! 오창선?! 유진아, 국장님이 이걸 우리한테 넘겼다고?"

"네. 전임 1팀, 2팀도 세 번이나 현장 수색을 나갔다가 문전박대당하고 돌아왔대요. 사설 경호업체 덩치들이 대문을 가로막고, 영장 없이는 발도 못 붙인다면서 법대로 하라고 드러눕는 바람에 번번이 허탕을 쳤다더군요. 이번에도 못 털면 우리 3팀 실적은 바닥을 칠 겁니다."

"저놈 아주 악질 중의 상악질이야! 자기는 파산해서 수중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배를 째면서, 마누라랑 내연녀 명의로 슈퍼카를 대여섯 대씩 굴린다잖아. 게다가 뒤에 정계 쪽 줄도 든든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경찰도 영장 집행에 미온적이고."

강철웅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국세청 조사4국 내에서도 '폭탄 돌리기'로 악명 높은 사건이었다. 건드려 봐야 실적은커녕 윗선 눈치나 보고, 현장에서는 용역 깡패들에게 밀려 망신만 당하기 일쑤인 계륵. 배강태 국장이 신임 3팀장 신동혁의 콧대를 꺾어놓기 위해 일부러 던져준 미끼가 분명했다.

차유진이 동혁을 쏘아보며 도발하듯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팀장님? 저택 명의가 바하마 국적의 페이퍼 컴퍼니로 되어 있어서, 경찰 병력을 동원해 강제 진입하려면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해서 법원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와야 합니다. 영장 떨어지기까지 최소 사흘은 걸리는데, 그사이 놈이 금고를 다 비울 겁니다. 전 팀장님 같이 그냥 보고서 한 장 쓰고 넘기실 건가요?"

동혁이 서류철에 첨부된 오창선의 거주지 사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높다란 담벼락, 담장 위를 촘촘히 두른 철조망과 적외선 감지 센서, 대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검은 양복의 사설 경호원들. 흡사 중세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 저택이었다.

동혁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성북동이라…… 거기 북악산 자락 쪽에 30년 전통 해물짬뽕 기가 막히게 하는 집 있는데."

"팀장님!"

"왜요? 출장 나가서 밥도 안 먹고 일합니까? 강 반장님, 국세청 체납징수용 압류 딱지랑 조끼 챙기세요. 현장 나갑니다."

"예? 지, 지금 바로요? 경호원들만 열 명이 넘는다니까요?"

동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헐렁한 재킷을 걸치며 슬리퍼를 국세청 로고가 박힌 검은 구두로 갈아 신었다.

"284억이면 탕수육이 몇 그릇이야. 국가 재정을 축내는 악덕 체납자 놈의 지갑을 탈탈 털어서 국고로 환수해야 우리 공무원들 월급도 오르고 야식비도 나오는 법입니다. 자, 칼퇴근을 위해 빠르게 털고 오죠!"

성북동 고급 주택가.

높다란 콘크리트 담벼락 아래, 국세청 로고가 박힌 승합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차유진과 강철웅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저택의 육중한 철문 앞에는 팔뚝에 문신을 새긴 건장한 사설 경호원 넷이 팔짱을 낀 채 살벌한 눈빛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저, 저것들 덩치 좀 봐. 유진아, 공무원증 목에 단단히 걸어라. 밀리면 끝장이다."

"알겠습니다. 국세징수법 제36조에 따른 정당한 질문·검사권과 수색 권한을 고지하고 진입하겠습니다."

차유진이 결연한 표정으로 서류철을 품에 안고 철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입니다! 국세징수법에 따라 고액 체납자 오창선 씨의 실거주지에 대한 가택 수색 및 동산 압류를 집행하러 왔습니다. 당장 문을 여십시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아이고, 세무서 양반들 또 오셨네? 여기 오창선 회장님 댁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집주인은 엄연히 외국계 법인이고, 회장님은 그냥 지인 부탁으로 잠시 머무는 게스트일 뿐이에요. 주거침입으로 고소당하기 싫으면 영장 가져와서 번호표 뽑고 기다리쇼."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실거주가 확인된 이상 세무공무원의 수색을 방해하는 행위는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합니다! 비키세요!"

"어허, 이 아가씨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법대로 하라니까? 야, 막아."

덩치 큰 경호원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차유진과 강철웅의 앞을 위압적으로 가로막았다. 물리적인 힘에서 압도적으로 밀리자 강철웅이 쩔쩔매며 소리쳤다.

"이, 이거 안 놔?! 공무집행방해로 경찰 부를 거야!"

"부르세요, 불러! 경찰 오면 주거침입 현행범으로 당신들 먼저 넘길 테니까!"

몸싸움이 벌어지며 대치 정국이 격화되던 바로 그 순간.

차유진이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강 반장님, 팀장님은요?"

"어? 방금까지 우리 뒤에 계셨는데? 어디 가셨어?"

차량 주변은 물론이고 골목 어디에도 신동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빗자루로 쓸어낸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설마…… 덩치들 보고 겁먹어서 차 타고 도망치신 거예요?!"

차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첫 출근 날부터 온갖 폼은 다 잡더니, 험악한 깡패들을 보자마자 팀원들을 버려두고 꽁무니를 뺀 것인가.

"아, 아이고! 팀장님! 어디 가신 겁니까!"

하지만 그 시각, 신동혁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저택 뒤편, 깎아지른 듯한 4미터 높이의 옹벽 아래.

신동혁은 벽에 바짝 붙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담장 위에는 고전압 철조망과 함께 사각지대 없이 회전하는 폐쇄회로 카메라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기어오를 엄두도 내지 못할 요새.

하지만 동혁의 눈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메라 회전 주기 12초. 적외선 센서 교차 공백 3.5초. 2층 테라스 난간까지의 지지대 간격 1.8미터.'

동혁의 뇌리에서 수식과 궤적이 번개처럼 연산되었다. 과거 국군정보사령부 특수임무대와 국정원 블랙 요원 시절, 적국의 군사 요새와 비밀 안가를 제집 안방 드나들듯 침투했던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에서 되살아났다.

탁.

동혁의 발이 옹벽의 미세한 틈을 밟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소리도 없었다. 한 마리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담장 위 적외선 센서의 사각을 스쳐 지난 동혁은, 단 두 번의 도약만으로 3층 서재 테라스 난간에 가볍게 착지했다.

스르륵.

창문 잠금장치는 동혁이 품에서 꺼낸 얇은 티타늄 핀 하나로 1초 만에 딸깍 소리를 내며 해제되었다.

발소리를 완벽히 죽인 채 서재 안으로 들어선 동혁은 방 안의 풍경을 감상하듯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바닥에는 최고급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벽면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현대 미술품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놓인 마호가니 책상 앞.

실크 가운을 걸친 50대 남자가 커다란 모니터 세 대를 띄워놓고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바로 이 저택의 주인이자 284억 체납자, 오창선이었다.

오창선은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대문 앞 상황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쯧쯧, 피라미 세무 공무원 놈들. 땡볕에서 고생이 많다. 어디 한번 날 저물 때까지 소리나 질러 봐라. 문이 열리나."

"그러게요. 날도 더운데 밖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직원들이."

"그렇지? 아주 멍청한…… 엉?"

오창선이 와인 잔을 입에 대려다 말고 굳어버렸다.

등 뒤에서 들려온 너무나 자연스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오창선이 벼락 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훤칠한 미남 청년이 서재 한구석의 티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친 채, 오창선의 최고급 영국산 홍차 틴케이스를 열어 냄새를 킁킁 맡고 있었다.

"오, 포트넘 앤 메이슨 로열 블렌드네요? 회장님, 체납액이 284억인데 차는 아주 럭셔리하게 드시네. 물 좀 끓여도 되죠?"

"너, 너 뭐야?! 으, 어떻게 들어왔어?!"

오창선이 기겁하며 의자에서 펄쩍 뛰었다.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붉은 액체를 쏟아냈다.

"경호원! 김 실장! 야, 이 새끼들아! 도둑 들었다!"

오창선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비상벨을 마구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