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과 일곱 명의 녀석들1회차

1회차 · 나비

첫 번째 녀석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성은 백이요, 이름은 설이다.

합치면 백설.

아버지는 설날 새벽에 갓 태어난 딸을 보고 ‘눈처럼 맑고 깨끗하게 자라라’는 거창한 뜻을 담아 지어 주셨다지만,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 백설? 그럼 백설공주네!”

백설은 태어나서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이래, 이 말을 만 번쯤 들었다.

이름만 그러면 또 모른다. 문제는 외모였다.

백설은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밀가루를 뽀얗게 뒤집어쓴 것처럼 새하얀 피부, 밤하늘을 뚝 떼어 박아 넣은 듯 커다랗고 또렷한 눈망울, 그리고 앵두 같은 입술.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도, 마트 계산원 아주머니도, 택배 기사 아저씨도 백설의 얼굴을 보면 입을 모아 탄성을 내질렀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인형 같아? 진짜 백설공주가 따로 없네!”

칭찬인 건 알겠는데, 백설은 다섯 살 때부터 이 별명이 몹시도 지겨웠다.

공주가 뭐길래.

동화책을 읽어 보니 백설공주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질질 짜다가 난쟁이들 집에 들어가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질 않나, 수상한 할머니가 주는 사과를 덥석 받아먹고 목에 걸려 쓰러지질 않나, 마지막엔 웬 낯선 남자가 뽀뽀해 주니까 좋다고 따라가는 게 아닌가.

‘내가 왜 그 멍청한 공주야?’

다섯 살 백설은 생각했다.

자신은 사과를 먹을 때 반드시 흐르는 물에 빡빡 씻어 칼로 껍질을 깎아 먹을 것이며, 낯선 사람이 주는 건 발로 차 버릴 테고, 길을 잃으면 파출소로 직행할 똑똑한 아이였다.

하지만 세상은 백설의 이런 당찬 내면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백설이 머리를 질끈 묶고 흙바닥에서 씩씩하게 구르든 말든, 사람들은 그저 ‘우윳빛 피부의 예쁜 공주님’으로만 보았다.

그리고 일곱 살 무렵, 샛별유치원 햇살반에 입학했을 때였다.

백설의 인생에 첫 번째 ‘녀석’이 나타났다.

* * *

녀석의 이름은 김민재였다.

백설이 살던 은하빌라 201호의 바로 앞집, 202호에 살던 동갑내기 꼬맹이였다.

민재는 찐빵처럼 통통한 뺨에 콧구멍이 유난히 동글동글한 아이였다. 자세히 뜯어보면 눈웃음이 꽤 귀여운 편이었지만, 문제는 귀여운 외모 속에 숨겨진 지독한 끈기였다.

민재의 유치원 생활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백설이랑 결혼하기.’

햇살반 문이 열리는 아침 아홉 시부터 집에 가는 오후 세 시까지, 민재는 백설의 반경 1미터 이내를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설아!”

유치원 신발장에 신발을 넣기가 무섭게 민재가 쿵쾅거리며 달려왔다. 볼살이 출렁거렸다.

“또 왜.”

백설이 실내화로 갈아 신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민재는 헤죽 웃으며 양손을 등 뒤로 감췄다.

“이거 봐라! 내가 너 주려고 집에서 몰래 챙겨 왔다!”

민재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껍질이 살짝 찌그러진 포도맛 막대사탕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 단 거 별로 안 좋아해. 이 썩어.”

“진짜 맛있는데…… 내가 아침에 누나 몰래 서랍에서 훔친 건데…….”

“훔친 건 더더욱 안 받지.”

“누나한테 허락받고 훔친 거야!”

“허락받고 훔치는 게 어디 있어, 바보야.”

백설이 매몰차게 교실로 홱 들어가 버리자, 민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총총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설아! 그럼 우리 소꿉놀이 할래?”

“안 해. 나 블록 쌓을 거야.”

“내가 블록으로 성 만들어 줄게! 너 공주님이니까 성에 살아야 하잖아!”

“나 공주님 아니거든?”

백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민재는 굴하지 않았다.

“아니야, 넌 백설공주야. 우리 엄마가 너 보고 진짜 공주님처럼 예쁘다고 그랬어. 우리 아빠도 너 보면 며느리 삼고 싶대!”

“며느리가 뭔지는 알고 말하냐?”

“응! 아내!”

민재가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아빠 놀이 하자. 내가 아빠 할게!”

“내가 왜 엄마를 해? 싫어.”

“왜애……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올게! 가방도 사 줄게!”

민재의 끈질긴 조르기는 오전 내내 이어졌다.

자유놀이 시간이 되자 민재는 아예 주방놀이 세트가 있는 매트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백설을 향해 손짓했다.

“여보! 밥 줘!”

지켜보던 햇살반 친구들이 킥킥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담임선생님마저 입을 틀어막고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백설은 기가 찼다. 내가 왜 저 찐빵 같은 녀석의 ‘여보’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무시해도 민재는 “여보! 배고파! 여보오!”를 외치며 온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댔다. 이러다간 하루 종일 시달릴 게 뻔했다.

결국 백설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성큼성큼 주방놀이 매트로 걸어갔다.

“야, 김민재.”

“응, 여보!”

“너 방금 아빠 한다고 했지?”

“응! 나 멋있는 아빠!”

민재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주워 왔는지 플라스틱 넥타이 모형을 목에 걸고 있었다.

백설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민재의 목에 홱 걸어 버렸다.

“컥, 설아? 이게 뭐야?”

“오늘부터 룰을 바꾼다. 네가 엄마 해.”

“어? 내가 엄마야? 아빠는 넥타이 매고 돈 벌러 가야 하는데?”

“내가 돈 벌러 갈 거야.”

백설은 장난감 서류 가방을 번쩍 들고 옆에 있던 플라스틱 안경을 척 썼다.

“남편인 내가 나가서 야근하고 돈 벌어 올 테니까, 너는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저녁밥 맛있게 차려 놔. 알겠어?”

민재는 눈을 깜빡거리며 상황 파악을 시도했다.

동화책이나 TV에서 보던 엄마아빠 놀이와는 뭔가 심각하게 달랐다. 보통은 자기가 멋지게 퇴근해서 소파에 눕고, 설이가 플라스틱 프라이팬으로 가짜 계란후라이를 부쳐 줘야 하는 그림이었다.

“그, 그래도 내가 남잔데…….”

“돈 많이 벌어오는 사람이 가장이야. 불만 있어? 불만 있으면 이혼해.”

“이, 이혼이 뭔데?”

“남남 되는 거. 나 딴 데 간다?”

“안 돼! 이혼 안 해!”

민재는 기겁하며 앞치마 끈을 꽉 쥐었다.

“밥 차릴게! 밥 차릴 테니까 가지 마!”

“좋아. 그럼 나 회사 다녀온다. 오늘 부장님이 갈궈서 기분 안 좋으니까 국은 얼큰하게 끓여 놔.”

백설은 장난감 서류 가방을 덜렁거리며 교실 한 바퀴를 씩씩하게 돌았다.

블록 놀이를 하던 남자애들에게 다가가 “김 대리, 오늘 결재 서류 어떻게 됐어?” 하고 묻는 백설의 포스에 아이들은 얼떨결에 플라스틱 블록을 공손히 건넸다.

한편 주방 매트에 홀로 남겨진 민재는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얼큰한 국…… 얼큰한 국이 빨간색인가……?”

민재는 플라스틱 냄비에 빨간색 털실 뭉치와 초록색 레고 블록, 장난감 당근을 마구 쓸어 담았다. 그리고 플라스틱 주걱으로 냄비를 쾅쾅 두드리며 가상의 찌개를 끓였다.

“여보! 밥 다 됐어! 빨리 퇴근해!”

백설이 가방을 든 채 거만한 걸음걸이로 돌아왔다.

“여보, 다녀왔어.”

“응!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지? 내가 맛있는 거 많이 했어!”

민재는 양손으로 냄비를 공손히 받쳐 들고 백설의 앞에 내려놓았다.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기대하는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

백설은 냄비 안을 힐끗 들여다보더니 팔짱을 딱 꼈다.

“이게 뭐야?”

“얼큰한 찌개!”

“간은 봤어? 왜 이렇게 당근만 잔뜩 들어가 있어? 나 당근 싫어하는 거 몰라?”

“어……? 그, 그치만 빨간색이 없어서…….”

“그리고 반찬은 이게 다야? 고기는 어디 갔어? 하루 종일 밖에서 힘들게 돈 벌고 온 사람한테 고기반찬도 없이 풀떼기만 주면 어떡해?”

백설의 속사포 같은 지적에 민재의 통통한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미, 미안해…… 다시 끓여 올게…….”

“됐어. 입맛 떨어졌어. 나 소파에서 잘 거니까 깨우지 마.”

백설은 매트 한구석에 인형을 베개 삼아 털썩 누워 버렸다.

완벽한 ‘가부장적 K-가장’의 재현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민재는 냄비를 든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여자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민재네 집 진짜 불쌍하다.”

“민재 엄마, 힘내.”

민재는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누워 있는 백설의 눈부시게 하얀 옆얼굴을 보자 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민재는 훌쩍거리며 플라스틱 장난감 고기를 찾아 바구니를 뒤적였다.

“여보…… 소고기 구워 올게…… 자지 마…….”

그날 이후 유치원 햇살반의 권력 구도는 완전히 정리되었다.

* * *

하지만 김민재의 순애보는 고작 소꿉놀이의 굴욕 따위로 꺾일 수준이 아니었다.

오후 간식 시간.

선생님들이 커다란 쟁반에 깨끗이 씻은 사과를 한 조각씩 담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빨간 사과였다.

아이들이 신나게 포크로 사과를 찍어 먹기 시작할 때, 백설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짓궂은 남자애, 혁이가 낄낄거리며 시비를 걸어왔다.

“야! 백설공주!”

백설은 사과를 입에 넣으려다 말고 혁이를 쳐다보았다.

“왜.”

“너 그 사과 먹으면 안 된다? 그거 마녀가 독 탄 사과야! 너 그거 먹으면 꽥 죽는다!”

혁이가 혀를 길게 빼물고 죽는 시늉을 하자, 주변의 짓궂은 남자애들이 덩달아 꺄르르 웃어 댔다.

“맞아! 백설공주는 사과 먹고 쓰러져야 해!”

“선생님! 백설이 독사과 먹고 쓰러진대요!”

유치원생다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림이었다. 백설은 한숨을 푹 쉬며 대꾸했다.

“이거 유기농 사과거든? 독 같은 소리 하네.”

“에이, 거짓말! 백설공주는 원래 사과 먹고 죽는 거란 말이야! 먹어 봐, 먹어 봐!”

혁이가 식판을 탕탕 치며 약을 올렸다.

백설이 진짜로 한 대 쥐어박아 줄까 고민하며 주먹을 쥐려는 찰나였다.

“비켜어어어어!”

교실 반대편에서 거친 포효와 함께 육중한 그림자가 돌진해 왔다.

김민재였다.

민재는 쿵쾅거리며 달려와 혁이의 어깨를 퍽 밀쳐 내더니, 백설의 식판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섰다. 마치 영화 속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몸으로 막아서는 보디가드 같은 자세였다.

“설이 괴롭히지 마, 이 나쁜 놈들아!”

“뭐야, 김민재? 넌 또 왜 오버야?”

혁이가 툴툴거리자, 민재는 백설의 식판에 놓여 있던 빨간 사과 조각을 덥석 낚아챘다.

“설아! 내가 널 지켜 줄게!”

“야, 김민재. 그거 내 간식…….”

백설이 말릴 틈도 없었다.

민재는 눈을 질끈 감더니, 커다란 사과 조각을 입안에 쑤셔 넣고 꿀꺽 삼켜 버렸다. 씹지도 않고 삼키느라 목구멍이 불룩해졌다.

“컥!”

민재가 헛구역질을 하며 가슴을 쳤다.

“야! 너 미쳤어? 왜 남의 사과를 네가 쳐먹어!”

백설이 기겁해서 소리쳤다.

그러나 민재는 비장한 눈빛으로 백설을 바라보았다. 민재의 둥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설아…… 내가…… 독사과…… 대신 먹었다…….”

“뭐?”

“으윽……!”

민재는 갑자기 배를 움켜쥐더니, 교실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정말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혀를 살짝 내미는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나…… 이제 죽는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혁이와 아이들은 멍하니 민재를 쳐다보았고, 교실 뒤편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담임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며 다가왔다.

“어머, 민재야? 왜 그래? 사과 목에 걸렸니?”

“선생님…… 오지 마세요…… 저는 이제 끝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