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일 뒤의 복채2회차

2회차 · 드림캐처

넘어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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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는 게 지옥 같아요. 오늘은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내 인생을 망치게 될까, 그 생각부터 들거든요."

배연주의 목소리는 잘게 부서졌다. 그녀는 헐렁한 카디건 소매를 쥐어뜯듯 움켜쥐며 승아를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젖은 눈동자에는 지독한 갈망과 불안이 뒤엉켜 있었다.

"1년 전에는요, 선생님이 그 사람 도박 빚이랑 사기 전과를 짚어주셨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죠. 파혼하고, 번호 바꾸고, 숨어버렸어요. 덕분에 빚더미에 앉는 꼴은 면했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연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자격증 시험을 보려고 접수를 해놓고도 시험장에 못 가요. '합격해도 취직이 안 되면 어쩌지? 취직해도 또 이상한 회사면 어쩌지?'…… 작은 결정 하나를 내릴 때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요. 내가 또 속는 게 아닐까, 내 판단은 늘 틀렸는데 내가 감히 뭘 고를 수 있을까."

승아는 아무 말 없이 연주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붉게 짓물러 있었다. 불안을 이기지 못해 손톱 주변 살을 끊임없이 뜯어낸 흔적이었다.

"어제도 그랬어요. 1년 만에 겨우 작은 디자인 회사 면접 제의가 들어왔는데…… 문지방을 넘으려다 주저앉아서 세 시간을 울었어요. 그 회사가 석 달 뒤에 망하면 어떡해요? 대표가 월급을 떼먹으면 어떡해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전 또 바보처럼 속을 텐데요."

연주가 테이블 위로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눈빛이 광기 어린 집착으로 번들거렸다.

"선생님이 봐주세요. 저 내일 그 회사 면접 보러 가야 해요, 말아야 해요? 안전한 곳 맞아요? 월급은 꼬박꼬박 나와요? 석 달 뒤에 저 거기서 웃고 있어요, 아니면 또 울고 있어요? 제발 말해주세요. 선생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요."

숨이 가쁜 질문들이 쏟아져 내렸다. 연주가 바라는 것은 명확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를 위험과 책임을 누군가 대신 짊어져 주는 것. 틀릴 수 있는 공포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보증서.

'돌부리를 치워주면 당장은 안 넘어지겠지. 하지만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국 더 깊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법이야.'

오도경의 메마른 음성이 승아의 귓전을 묵직하게 때렸다. 승아는 연주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1년 전, 자신은 연주의 눈앞에 놓인 낭떠러지를 피하게 해 주었다. 그건 선의였고 구원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연주는 스스로 걸을 힘을 잃어버린 채, 작은 턱 하나에도 공포에 질려 주저앉는 불구의 마음이 되어 돌아왔다. 고통을 겪고, 배신당하고, 억울해하고, 다시 이를 악물고 일어서는 삶의 면역력을 승아 자신이 앗아간 것이었다.

"연주 씨."

승아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다른 깊은 망설임이 서려 있었다.

"제가 안전하다고 말하면, 내일 면접을 보러 가실 건가요?" "네! 선생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요." "그럼 그 회사에 들어간 뒤에는요?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릴 때, 동료와 갈등이 생길 때, 연봉 협상을 해야 할 때…… 그때마다 저를 찾아오실 건가요?" "선생님……." "석 달 뒤, 반년 뒤, 1년 뒤…… 평생 제 입만 쳐다보며 사실 건가요?"

연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치만…… 전 무서워요. 또 상처받을까 봐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선생님은 미래를 보시잖아요. 덜 다치는 길을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안 알려주시려는 건데요?" "덜 다치는 길은 있어도, 다치지 않는 길은 없으니까요."

승아는 서랍에서 묵직한 검은 가죽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아무런 무늬도, 상징도 없는 순수한 칠흑의 블랭크 덱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을 얹으세요." "선생님……." "내일 면접을 보러 가는 그 회사의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석 달 뒤, 계절이 바뀔 무렵의 자신을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연주는 울먹이며 떨리는 왼손을 검은 카드 더미 위에 얹었다. 승아는 심호흡을 하며 연주의 손등 위로 손가락 끝을 닿을 듯 말 듯 가깝게 가져갔다.

스스륵.

귓가에서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유리 벽을 긁으며 쏟아지는 환청이 울렸다. 백일시가 열렸다.

탁하고 서늘한 바람. 야근으로 불이 켜진 좁은 사무실. 연주는 모니터 앞에서 붉어진 눈으로 시안을 수정하고 있었다. 옆자리 상사가 서류철을 책상에 툭 던지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타박을 주었다.

'배연주 씨, 손이 왜 이렇게 느려? 전공자 맞아?'

연주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서러움에 눈물이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환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퇴근길, 한밤중의 버스 정류장. 연주는 차가운 캔커피를 뺨에 대며 홀로 서 있었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완성한 제품 카탈로그가 쥐여 있었다. 비록 상사에게 깨지고, 박봉에 시달리고, 매일 밤 울면서 퇴근할지언정…… 그녀의 두 다리는 땅을 단단히 딛고 서 있었다. 1년 전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바들바들 떨던 유령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살아 있었다.

승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백일시의 감각에서 빠져나왔다. 현실의 상담실로 돌아오자, 여전히 공포에 질린 채 승아의 입술만 바라보는 연주가 있었다.

예전의 승아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가지 마세요. 가봤자 상사에게 무시당하고 야근에 시달리며 매일 밤 울게 됩니다. 더 편하고 안전한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했다면 연주는 내일 면접을 포기했을 것이고, 상처받지 않은 채 안전한 방안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리고 반년 뒤에는 방문조차 열지 못하는 폐인이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승아는 타로 덱을 반으로 갈라 테이블 위에 넓게 펼쳤다. 칠흑 같은 카드들이 부채꼴로 늘어섰다.

"연주 씨, 카드를 직접 세 장 뽑으세요." "어떤 카드를…… 뽑아야 하죠? 좋은 카드가 어떤 건데요?" "좋은 카드는 없습니다. 연주 씨의 마음이 향하는 것을 고르세요." "모르겠어요. 제가 고르면 또 최악만 뽑을 것 같아요……." "틀려도 괜찮습니다. 넘어져도 무릎 좀 까지는 것뿐이에요. 뼈가 부러지지 않아요."

승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연주 씨가 겪어야 할 시간을 도망치지 마세요."

연주는 숨을 헐떡이며 펼쳐진 검은 카드들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이 허공에서 방황했다. 이것을 잡으면 불행해질까 봐, 저것을 잡으면 또 사기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손짓이었다. 째깍, 째깍, 째깍.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가 상담실 안을 무겁게 채웠다. 연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마침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카드 세 장을 짚어 앞으로 밀어냈다.

승아는 카드를 뒤집었다. 첫 번째 카드는 '칼 3번' — 심장을 꿰뚫은 세 개의 검. 상처와 눈물. 두 번째 카드는 '동전 8번' — 어두운 공방에서 홀로 돌을 깎는 장인. 고단한 노동과 인내. 세 번째 카드는 '바보' — 낭떠러지 끝에서 배낭을 메고 첫 발을 내딛는 청년.

"이게…… 무슨 뜻이에요?" 연주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면접을 보러 가면, 연주 씨는 합격할 겁니다." "정말요?" "하지만 그 회사는 결코 편안한 낙원이 아닙니다. 상사는 까다롭고, 일은 고되며, 스스로의 부족함에 매일 밤 눈물을 흘릴 겁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카드가 그걸 말해주고 있어요."

연주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럼…… 안 가는 게 낫잖아요." "그 울음 끝에 세 번째 카드가 있습니다."

승아는 '바보' 카드를 연주의 손 쪽으로 밀어주었다.

"상처받는 법을 배우고, 그걸 견뎌내는 법을 배울 겁니다. 비로소 연주 씨의 발로 세상이라는 낭떠러지 앞을 걸어 나가게 될 거예요. 석 달 뒤의 연주 씨는 매일 울고 있지만, 더는 결정을 두려워하며 방 안에 숨어 있지 않습니다."

연주는 카드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검은 천 위로 짙은 얼룩을 남겼다.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욕먹는 것도 무섭고, 야근하는 것도 무서운데……." "힘들 겁니다. 아주 많이요." 승아는 거짓으로 안심시키지 않았다. 현실의 모서리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남이 연주 씨에게 씌운 덫이 아니라, 연주 씨가 어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정당한 값입니다. 피하지 않고 치러내면, 그 고통은 살이 되고 뼈가 됩니다."

연주는 양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그 울음은 아까의 비명 같은 절망과는 달랐다. 억눌러왔던 두려움을 밖으로 토해내는, 일종의 성장통 같은 울음이었다. 한참을 울던 연주가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퉁퉁 부은 눈으로 고개를 들고,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장의 카드를 가만히 쓸어내렸다.

"저…… 내일 면접 갈게요." "연주 씨." "욕먹더라도 가볼게요. 또 도망치면…… 평생 이 방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아요."

연주는 가방에서 구겨진 지갑을 꺼내 복채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어깨는 여전히 작고 가냘팠지만, 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 발걸음에는 아까와 달리 분명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딸랑.

도어벨 소리가 울리고 연주가 나간 뒤, 상담실에는 깊은 적막이 찾아왔다. 승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장의 카드를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면서도 묵직하게 차올랐다.

불행을 없애주는 것이 상담사의 역할이 아니다. 불행을 마주할 수 있도록, 그 고통을 감당할 주도권을 손님의 손에 쥐여주는 것. 승아는 비로소 자신이 지닌 '백일시'라는 기이한 짐의 진짜 쓰임새를 아주 조금 엿본 것 같았다.

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블라인드 틈새로 밖을 내다보자, 골목 맞은편 '태엽당'의 쇼윈도 안에서 오도경이 돋보기를 끼고 시계를 분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의 손끝에서 작은 톱니바퀴들이 제자리를 찾아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두어야 한다. 삐걱거리고 마찰음이 나더라도, 그 마찰을 견디며 스스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였다.

쿵!

상담소 여백의 낡은 유리문이 거칠게 밀려 열렸다.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덜컹거렸고, 맑은 종소리 대신 날카로운 파열음이 공간을 갈랐다.

"여기가 미래를 본다는 그 타로 집 맞습니까?"

급하고 거친 목소리였다. 승아는 천천히 돌아섰다.

문간에 선 남자는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값비싸 보이는 맞춤 정장 셔츠는 단추가 두 개나 풀린 채 심하게 구겨져 있었고, 재킷은 한쪽 팔에 대충 걸쳐져 있었다. 수면 부족으로 벌겋게 충혈된 눈, 면도를 며칠간 거른 듯 거뭇한 턱, 그리고 쉴 새 없이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는 초조한 손놀림. 온몸에서 벼랑 끝에 몰린 자 특유의 날 선 악취가 풍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