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전무이사1회차

1회차 · 샤인

부실채권과 내부 감사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대한민국 굴지의 사모펀드 한결 파트너스의 전무 강선우는 숫자로 세상을 보았다.

그에게 세상은 감정이나 명분이 아닌, 자산과 부채의 균형표였다. 흑자 도산 위기에 몰린 국내 최대 물류 기업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날 밤이었다. 수천억 원대의 부실 채권을 털어내고, 복합 물류망을 개편해 기업 가치를 세 배로 끌어올린 매각 협상이 마침내 타결되었다.

“전무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딜은 업계 전설로 남을 겁니다!”

부하 직원들의 환호와 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강선우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들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렸지만, 부하들의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고 성과급은 언제나 업계 최고로 챙겨 주던 상사였다.

“모두 여러분이 밤낮없이 뛰어준 덕분입니다. 내일부터 일주일간 전원 특별 유급 휴가입니다. 비용은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하세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팀원들을 배웅하고 홀로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시계는 이미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강선우는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삼십 년 동안 기업을 살리고 채권을 회수하느라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했다.

가슴 한구석에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숨이 턱 막혔다.

‘……심근경색인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잡으려 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1화 삽화 —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잡으려 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평생 남의 회사 장부만 맞추다가…… 내 인생의 결산서는 적자로 끝나는군.’

그것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회생 전문가, 강선우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도련님! 으아앙! 제발 눈 좀 떠보세요! 도련님마저 가버리시면 저는 누구 밑에서 밥을 얻어먹고 삽니까요!”

귓전을 때리는 시끄러운 곡소리에 강선우는 눈을 떴다.

두통이 지끈거렸다. 호화롭지만 어딘가 빛바랜 마호가니 침대, 높다란 천장에 매달린 낡은 샹들리에, 그리고 자신의 침대보를 붙잡고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낯선 청년이 보였다.

청년은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잔뜩 구겨진 집사복을 입고 있었다.

“……누구시죠?”

선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맑고 차분하며, 젊은 남자의 음성이었다.

곡소리를 내던 청년이 딸꾹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히익! 도, 도련님? 살아나셨군요!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선대 상회주님께서 심장마비로 급서하시고, 도련님마저 충격으로 쓰러지셔서 사흘 밤낮을 앓아누우셨잖아요!”

“선대…… 상회주?”

“예! 테란 상회의 기둥이셨던 아르만 나으리요! 아아, 나으리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채권자 놈들이 늑대 떼처럼 몰려오고 있는데, 도련님까지 관 뚜껑 닫으러 가시는 줄 알고 이 불쌍한 피핀은 혀를 깨물 뻔했습니다요!”

피핀이라 불린 청년은 호들갑을 떨며 허공에 양손을 휘저었다. 말끝마다 과장된 몸짓을 섞는 품이 어지간한 푼수였다.

그 순간, 낯선 기억의 파편들이 뇌리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대륙의 물류 명가, 테란 상회. 선대 가주 아르만 폰 테란의 사생아, 테오 폰 테란. 그리고 방만한 경영과 부패한 친족들의 횡령, 귀족 카르텔의 무역 봉쇄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린 상회의 참담한 현실.

선우, 아니 테오는 침대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협탁 위에 놓인 은경에 비친 얼굴은 짙은 흑발에 차가울 정도로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청년의 모습이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이목구비, 그러나 그 속에 깃든 눈빛은 삼십 년 동안 거대 자본의 정글에서 뼈를 깎는 생존 경쟁을 거친 베테랑의 그것이었다.

“피핀.”

“예, 예! 도련님!”

“당장 총지배인을 부르고, 최근 3개년 치 대차대조표와 현금출납장, 채무 증서를 전부 내 집무실로 가져와.”

피핀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대, 대차…… 뭐요? 출납……? 도련님, 방금 쓰러졌다 일어나셔서 머리에 열이 덜 내리신 겁니까? 장부는 조달부의 에른스트 나으리가 관리하시는데 저희가 그걸 어찌……”

“장부 일체.”

테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공간의 공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드는 기형적인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상회의 법적 상속인은 나다. 한 시간 주겠다. 가져오지 못하면 네 급여 장부부터 정리하지.”

“히익! 즉각 대령하겠습니다요!”

피핀은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을 뻔하다가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테오는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단정한 흑색 제복을 걸쳤다.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거울을 응시했다.

‘사생아로 멸시받던 도련님, 그리고 파산 직전의 상회라.’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상황은 최악이었으나, 숫자를 다루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테란 상회의 중앙 집무실. 탁자 위에는 누렇게 바랜 양피지 뭉치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인 노신사, 총지배인 클로드 바우어가 돋보기를 고쳐 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몸도 성치 않으신데 굳이 이 비극을 직접 보셔야겠습니까?”

클로드는 선대 가주 시절부터 충직하게 상회를 지켜온 원로였으나, 그의 얼굴에는 짙은 패배감과 절망만이 가득했다.

“봐야겠습니다. 현실을 알아야 처방전을 쓸 테니까요.”

테오는 깃펜을 들고 장부들을 빠르게 넘겼다. 대륙의 회계 방식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단식부기로 쓰인 장부는 수입과 지출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고, 외상 채권과 회수 불능 채권이 자산으로 둔갑해 잡혀 있었다. 그야말로 눈속임과 무지의 결정체였다.

테오는 백지를 끌어당겨 좌우로 선을 긋고, 현대식 복식부기 형태로 숫자를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자산, 부채, 자본. 차변과 대변의 균형을 맞추며 부실 덩어리를 발라냈다.

사각거리는 깃펜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옆에서 지켜보던 클로드의 눈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테오의 손끝에서 엉망진창이던 수백 장의 양피지가 명료하고 일목요연한 하나의 표로 압축되고 있었다.

테오가 깃펜을 내려놓았다.

“총 부채, 3,700만 제국 금화.”

테오의 건조한 목소리가 집무실에 울렸다.

“볼코프 금융상단에 원금 2,200만 금화. 백색 마탑에 촉매 대금 미지급액 800만 금화. 황실 세금 체납액 700만 금화. 평균 연이자 18.5%.”

클로드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습니다…… 특히 볼코프 상단과 백색 마탑은 ‘영혼각인 공증서’를 집행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변제 만기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엿새입니다.”

영혼각인 공증서. 마탑의 고위 마법으로 인장을 찍어 체결하는 대륙 최고의 강제 집행 계약이었다. 기한 내에 부채를 변제하지 못할 경우, 상회의 모든 자산 압류는 물론 가문 혈족 전원의 마력 회로가 영구 봉인되어 폐인이 된다.

“엿새 뒤면 테란 상회의 깃발은 꺾이고, 도련님과 가문 사람들은 모두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에른스트 조달부장을 비롯한 친족들은 이미 상회의 남은 현금을 빼돌려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쥐새끼들은 배가 가라앉기 전에 가장 먼저 튀는 법이니까.”

테오는 담담하게 장부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클로드 지배인님.”

“예, 도련님.”

“조달부 장부의 이 항목이 이상하군요. 남부 항만 확장 공사 명목으로 ‘베른 무역’이라는 유령 페이퍼 컴퍼니에 자재 대금으로 지급된 540만 금화. 출금 전표는 있는데, 입고된 마나석 촉매의 송장과 창고 보관증이 없습니다.”

클로드의 눈이 커졌다.

“그, 그것은 에른스트 부장님이 직접 결재한 건이라 상세 내역은 알지 못합니다만……”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횡령을 묵인한 거겠지요.”

테오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선대 가주께서 쓰러지신 진짜 원인은 카르텔의 압박만이 아닙니다. 내부의 피를 빨아먹은 기생충들이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지.”

그때,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서출 주제에 감히 내 부서의 장부를 함부로 뒤져?”

화려한 담비 가죽 코트를 걸치고 배를 불룩 내민 중년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선대 가주의 사촌이자 상회의 조달부장을 맡고 있는 에른스트 폰 테란이었다.

그의 뒤에는 피핀이 뺨을 한 대 맞았는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로 억울하다는 듯 훌쩍이며 따라 들어왔다.

“도, 도련님! 제가 말렸는데 에른스트 나으리가 힘으로 밀치고 들어와서 제 소중한 뺨을……!”

“시끄럽다, 이 천한 하인 놈이!”

에른스트가 피핀을 쏘아보며 윽박지른 뒤, 집무실 책상 앞에 섰다. 그는 테오를 깔보는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테오, 네놈이 아버지를 잃고 슬퍼서 실성을 한 모양이구나. 피 한 방울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 놈이 어디서 상회주 행세를 하려 드느냐? 당장 그 장부들을 내려놓지 못해!”

에른스트는 테오가 작성한 서류철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

탁.

테오가 가볍게 에른스트의 손목을 쳐냈다. 날카롭고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손 치우시죠, 에른스트 부장.”

“뭐, 뭐라? 부장? 내가 네 당숙이다!”

“상회 내에서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테오는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에른스트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공금 540만 금화를 사적으로 유용한 배임 및 횡령 혐의자에게 예를 갖출 이유는 없습니다.”

순간, 집무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에른스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너,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증거도 없이 감히 가문의 어른을 모함해?”

“증거요?”

테오가 서류 한 장을 에른스트의 눈앞에 던졌다.

“지난 1년간 조달부가 베른 무역에 송금한 내역서입니다. 베른 무역의 대표 명의는 당신의 처남인 한스 뮐러로 되어 있더군요. 그들이 납품했다는 마나석 촉매는 제국 표준 규격에도 맞지 않는 저급 폐기물이었습니다. 시세의 세 배 가격으로 허위 매입 처리를 하고, 차액 540만 금화는 당신의 비밀 금고로 들어갔죠.”

“그, 그것은 정당한 거래였……”

“남부 제3창고의 실사 재고표와 물류 이동 마법진 기록을 대조해 봤습니다.”

테오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사실과 논리만이 비수처럼 박혔다.

“입고 기록은 허위였습니다. 실제 마나석은 창고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 장부상으로만 물품이 오가고, 금화는 당신 처남의 계좌를 거쳐 세탁되었습니다. 이것을 제국 상업재판소와 황실 재정총국에 넘기면 어떻게 될까요?”

에른스트의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황실 법령 제42조, 전시 비축 물자인 마나석 관련 사기 및 횡령죄. 처벌은 전 재산 몰수 및 광산 종신 노역형입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처가 일족 전체가 말이죠.”

“도, 도련님…… 그, 그게 아니라……”

에른스트의 다리가 풀렸다. 그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전까지의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생아라 멸시받으며 집안 구석에서 숨죽이고 살던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기업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노련한 감사관,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