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살구꽃이 피는 자리1회차

1회차 · 소리

뒤틀린 뼈와 핏빛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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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내걸린 풍경은 온통 잿빛이었다. 늦가을의 메마른 한기가 초겨울의 진득한 습기를 머금고 차체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덜컹거리는 구형 SUV의 서스펜션을 타고 묵직한 충격이 전해질 때마다, 조수석에 웅크리고 앉은 노모 박옥순의 마른 어깨가 잘게 떨렸다.

태주는 룸미러로 뒷좌석에 실린 잡동사니와 노모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사방이 가파른 산세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 바깥세상과 통하는 길이라고는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뱀처럼 굽이치는 2차선 비포장도로 하나뿐인 곳. 태주의 고향, 묵리(墨里)였다.

먹을 갈아 엎어놓은 것처럼 음산하고 어두운 흙이 사방에 깔려 있어 예부터 그리 불렸다는 마을은, 십수 년 만에 돌아온 태주를 환영하는 기색 없이 짙고 축축한 안개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 우측 상단의 안테나 표시는 진작에 '서비스 안 됨'을 가리키며 꺼져 있었다. 외부와 연결되는 모든 전파가 산봉우리에 가로막혀 흩어지는 곳. 태주가 서울의 강력계를 떠나 이곳 묵리 파출소로 자원해 내려온 유일한 이유는 하나였다.

치매가 급속도로 악화된 어머니를 낯선 요양병원에 홀로 밀어 넣을 수 없다는 죄책감, 그리고 기억의 끝자락에서조차 오직 고향 집만을 찾으며 울부짖는 어머니의 앙상한 손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무이, 다 왔어요. 저기 앞에 우리 집 보이지요."

태주가 목소리를 낮추며 굳은 턱관절을 풀었다. 이성적이고 침착하려 애쓰는 태주의 말씨와는 달리, 옥순은 허공을 향해 초점 없는 눈을 둔 채 연신 메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구부정한 허리를 한껏 웅크린 옥순의 손가락은 패딩점퍼의 소맷단을 쥐어뜯듯 비틀고 있었다.

"물이…… 물이 넘쳐서 온 산이 꺼멓게 탄다. 태주야, 돌아가자. 여그는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아니여. 피 냄새가 진동을 혀……."

"또 쓸데없는 소리. 집 도착하면 따뜻한 물 끓여서 약부터 드십시다. 푹 주무시고 나면 괜찮아질 테니까."

태주는 굳은 얼굴로 핸들을 꺾었다.

1화 삽화 — 마을 어귀를 지날 때, 도로변에 우뚝 솟은 거대한 아름드리 당산목이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마을 어귀를 지날 때, 도로변에 우뚝 솟은 거대한 아름드리 당산목이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수백 년은 족히 묵었을 그 거목의 줄기에는 썩어가는 새끼줄과 비바람에 삭아버린 오색 천이 기괴한 형상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그 기괴한 형태를 바라보던 태주의 목덜미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어릴 적 동네 노인들은 늘 당산목을 가리키며 입버릇처럼 경고하곤 했다. 마을을 감싸는 결계이자 문지기인 신목이 건재한 한, 밤이 찾아오면 그 누구도 묵리의 경계를 살아서 벗어날 수 없다고. 어린 시절에는 그저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오게 하려는 흔한 어른들의 협박이라 여겼으나, 성인이 되어 강력계 형사로서 온갖 흉악범과 시체를 마주하고 돌아온 지금도 그 거목은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으로 묵리의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푸드덕, 하는 거친 날갯짓 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 서너 마리가 당산목 가지에서 솟구쳐 올랐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찢어질 듯 날카롭게 안개 낀 허공을 갈랐다.

끼에엑, 까악.

불길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뒤로하고 차는 마을 안쪽 깊숙한 골짜기 끝자락, 태주의 낡은 본가 앞에 멈춰 섰다.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은 흙벽 한옥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마당에는 정강이까지 자란 잡초들이 누렇게 말라비죽어 있었고, 빗물에 젖어 썩어가는 처마 밑으로는 거미줄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것은 비릿하고 차가운 흙냄새였다. 발밑을 밟는 흙은 늦가을의 흙이라기엔 지나치게 질척거렸고, 잿빛이 감도는 검은 흙에서는 묘하게 부패한 유기물의 냄새가 풍겼다.

태주는 조수석으로 돌아가 옥순을 부축해 내렸다. 옥순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으나,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못 들어간다…… 여그 문턱 넘으면 다 죽어. 그놈이 기다리고 있어. 검은 못바닥에서 올라온 놈이……."

"어무이, 나 강태주예요. 내 얼굴 봐요. 태주가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섭다고 그래요."

태주는 노모의 앙상한 양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며 단호하게 눈을 맞췄다. 초췌하고 피로가 짙게 깔린 눈동자 속에서도 경찰관 특유의 날카로운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옥순은 태주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잘게 흐느꼈다.

태주는 노모를 조심스럽게 안채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 안은 냉골이었다. 눅눅한 장판 밑에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고, 벽지 구석에는 오래전에 붙여둔 누런 부적 쪼가리가 붉은 주사 안료를 희미하게 드러낸 채 찢겨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태주는 마당 구석의 보일러실로 가 기름을 확인하고 전원을 켰다. 다행히 모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트렁크에서 이불과 옷가지를 꺼내와 방에 펴고, 어머니를 눕힌 뒤 두툼한 솜이불을 턱 밑까지 덮어주었다.

"몸 좀 녹이고 계세요. 트렁크에서 짐마저 내리고 올 테니까, 문밖으로 나오지 마시고요."

옥순은 대답 대신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앙상하게 도드라진 등뼈가 이불 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강력계 시절 겪었던 수많은 참혹한 사건들보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태주가 마당으로 나와 차 트렁크에서 무거운 이민 가방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기분 나쁜 축축한 안개 사이로, 숲 저편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다급한 고함이 울려 퍼졌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아이고, 성님! 이리 와보시오! 저기, 저기 사람이……!"

비명은 마을 어귀 쪽, 당산목 뒤편의 빽빽한 소나무 숲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말다툼이나 밭일을 하다가 다친 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영혼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극도의 공포가 담긴 비명이었다.

태주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었다. 십수 년간 현장을 뒹굴며 단련된 경찰의 감각이 뇌관을 때렸다. 태주는 들고 있던 가방을 마당 바닥에 내던졌다. 허리춤에 찬 혁대와 주머니에 든 경찰 신분증을 확인한 뒤, 마당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어무이! 문 잠그고 절대 나오지 마세요!"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태주의 등 뒤로, 옥순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흩어졌다.

'……살을 맞았어. 피를 봐야 끝나는 살이 내렸어…….'

* * *

마을 어귀 소나무 숲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안개와 빼곡한 나뭇가지 탓에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다. 축축하게 젖은 낙엽과 검은 흙을 밟으며 태주가 숲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이미 서너 명의 마을 주민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무 주위에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흙투성이가 된 작업복 차림의 마을 노인 하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 헛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다들 물러서세요!"

태주가 굵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치며 주민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여? 어…… 태주? 태주 맞냐? 태주가 여그 왜……."

이장을 비롯한 노인들이 핏기 없는 얼굴로 태주를 돌아보았지만, 태주는 그들의 인사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태주의 시선이 숲 한가운데, 썩어가는 고목 아래에 널브러진 '물체'에 닿은 순간, 그의 숨이 턱 끝까지 틀어막혔다.

"……세상에."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인간의 몸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변사체는 5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시체는 엎드린 상태였지만, 목은 등 뒤를 향해 정확히 180도 완전히 꺾여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튀어나올 듯 부릅뜬 양쪽 눈동자는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찢어진 입가에서는 굳어버린 검붉은 피거품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태주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것은 사지의 상태였다.

팔과 다리의 모든 관절이 바깥쪽으로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어깨뼈는 탈골되어 등 뒤로 기괴하게 솟아올라 있었고, 양 무릎은 관절의 정상적인 가동 범위를 무시한 채 앞으로 꺾여 허벅지와 정강이가 기역(ㄱ) 자가 아닌 역방향으로 부러져 있었다. 뒤틀린 뼈들이 피부를 뚫고 튀어나와 하얀 골편을 드러내고 있었고, 찢겨 나간 살점 주위로는 끈적하고 검은 피가 배어 나와 흙을 적시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인간을 젖은 빨래처럼 쥐어짜서 비틀어 놓은 듯한 참상이었다.

"건드리지 마세요! 현장 보존해야 합니다! 아무도 손대지 마!"

태주는 본능적으로 소리치며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지만, 태주는 이를 악물고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서울에서 엽기 살인마와 조폭들의 난자당한 시체를 숱하게 보아온 그였지만, 이토록 인체 해부학을 철저히 무시한 채 기괴하게 파괴된 시신은 난생처음이었다.

태주는 무릎을 꿇고 시신의 목덜미와 뒤틀린 관절 부위를 세밀하게 살폈다.

'기계로 꺾은 건가? 유압기 같은 중장비에 끼인 흔적은 없어. 둔기로 내려친 파쇄상도 아니다. 이건…….'

사람의 손으로 가능한 짓이 아니었다. 뼈를 이 정도로 비틀어 부러뜨리려면 엄청난 물리적 회전력이 순간적으로 가해져야 했다. 그러나 찢어진 옷가지 외에는 외부에서 밧줄로 묶거나 기계적 장치를 댄 압박흔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시체 주변의 환경이었다.

시체가 놓인 반경 2미터 이내의 땅에는 검은 흙이 마치 불에 탄 것처럼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까마귀 깃털 수십 개가 흩뿌려져 있었다. 시신의 가슴팍 쪽, 찢겨 나간 셔츠 틈새 사이로 축축하게 젖어 붉게 물든 종이 조각 하나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태주가 조심스럽게 핀셋 대신 장갑 낀 손끝으로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붉은 안료로 기괴한 뱀의 형상을 그려 넣은 부적이었다. 부적의 중심부에는 누군가의 피로 거칠게 덧칠된 글자가 적혀 있었다. 글자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 있었으나, 그 기운만은 살갗을 바늘로 찌르듯 서늘했다.

"파살제…… 아니, 파살굿의 살부(煞符)여……."

등 뒤에서 쇳조각이 갈리는 듯한 거칠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주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개 자욱한 소나무 사이로 백발이 성긴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낡아빠진 회색 두루마기 한복을 걸친 노인은 한쪽 눈이 하얗게 백태가 낀 채 완전히 멀어 있었고, 성한 나머지 한쪽 눈만이 기형적으로 번뜩이며 태주와 시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묵리의 박수무당, 천만석이었다.

"천 씨 영감님."

이장이 질린 목소리로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었다. 주민들은 마치 살아있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눈빛으로 천만석을 바라보았다.

천만석은 태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한쪽 눈의 하얀 백태 뒤에 숨겨진 시선이 태주의 가슴팍을 서늘하게 후벼 파는 듯했다.

"강 경사 아니신가. 서울 물을 먹고 오더니 제법 나으리 꼴을 갖추었구먼. 허나 여그 물을 먹고 오더니 제법 나으리 꼴을 갖추었구먼. 허나 여그는 법봉이나 총 쪼가리로 다스릴 수 있는 땅이 아니여."

천만석이 지팡이 끝으로 검붉게 물든 흙바닥을 쿵, 찍었다.

"이자는 묵리의 금기를 깼어. 밤중에 숲을 넘어 나가려다가, 검은 못에 갇힌 노한 영물(靈物)의 살을 맞은 게지. 인간의 뼈를 분질러 피를 바치지 않고서는 그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법이여. 이 시체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돼. 당장 당산목 아래로 끌고 가 파살굿을 올려 살을 털어내야 한단 말이여!"

천만석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나오자, 뒤에 서 있던 주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맞아, 만석 영감님 말이 맞아. 지난달에도 숲에서 소가 저 꼴로 꺾여 죽었잖여!"

"태주야, 경찰이고 뭐고 영감님 시키는 대로 굿부터 해야 혀. 안 그러면 마을에 또 피바람이 분다!"

노인들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웅성거리며 태주를 압박해왔다.

태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췌한 얼굴 위로 서늘한 분노가 스쳤다. 마르고 단단한 태주의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순식간에 소나무 숲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부 뒤로 물러서세요."

태주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이건 명백한 살인 사건입니다. 피해자의 신원도, 사망 추정 시각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체 손괴와 유기, 그리고 타살의 정황이 명백한 현장입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국과수 부검과 과학수사대의 현장 감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시신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습니다."

"강 경사!"

천만석이 성한 눈을 치켜뜨며 지팡이를 다시 한번 내리찍었다.

"네놈이 어미를 살리겠다고 이 저주받은 땅으로 기어들어 온 걸 내 모를 줄 아느냐? 네 어미의 죗값이 이 땅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거늘, 네놈의 그 얄팍한 법률 나부랭이로 악귀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해가 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