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실 4번 방2회차

2회차 · 파도

4번 방의 불청객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이선은 기가 차다는 듯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피아노 의자 등받이에 털썩 몸을 기댄 채, 그는 팔짱을 낀 채 채헌을 위아래로 뜯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갓 굴러들어 온 돌멩이를 바라보는 수석 채굴자처럼 까칠하고 건조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네. 팀장님이 뭐라고 했든, 이 방 안에서는 내가 먼저야. 여기서 목청 돋우면 내 모니터링 스피커 소리가 다 묻힌다고.”

“소리 지르지 않겠습니다. 발성 훈련도 허밍이나 스케일 위주로 낮춰서 할 거고요.”

채헌은 가방에서 스프링 노트와 물병을 꺼내 피아노 한쪽 구석, 이선의 장비가 닿지 않는 좁은 틈에 올려놓았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전 정식으로 이 방을 배정받았어요. 쫓아내고 싶으시면 박 팀장님한테 가서 직접 방을 바꿔 달라고 하세요. 그때까진 나갈 생각 없습니다.”

“어쭈.”

이선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눈치 보면서 빌빌 기는 타입인 줄 알았더니, 제법 깡은 있네.”

이선은 의자를 돌려 다시 건반을 향해 앉았다. 그는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악보 뭉치를 대충 밀쳐내더니,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작곡 프로그램 창을 클릭했다. 파란색과 붉은색의 오디오 트랙들이 빼곡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좋아. 버텨 봐, 어디. 대신 내 마이크나 오디오 인터페이스 쪽엔 손끝 하나 대지 마. 선 하나라도 뽑히면 그날로 짐 싸서 쫓겨날 줄 알아.”

이선이 헤드폰을 거칠게 귀에 덮어썼다. 이내 그의 긴 손가락이 미디 건반 위를 맹렬하게 오가기 시작했다. 헤드폰 바깥으로 잘게 쪼개지는 드럼 비트와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음향이 새어 나왔다.

채헌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첫 전투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냉기와 긴장감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좁은 4번 방의 공기는 이선이 내뿜는 서슬 퍼런 집중력에 짓눌려 있었다. 채헌은 그에게 등을 돌린 채, 보면대를 펴고 악보를 올렸다.

‘휘둘리면 안 돼.’

채헌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속삭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메트로놈 어플을 켰다.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은 채, 혀를 굴려 가볍게 턱 근육을 풀었다. 이선의 건반 타건음이 불규칙하게 등 뒤를 때렸지만, 채헌은 오직 자신의 호흡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성대를 얇게 붙여 저음부터 반음씩 올려나갔다.

가늘고 깨끗한 소리가 좁은 방의 방음벽을 조용히 울렸다.

등 뒤에서 건반을 누르던 이선의 손가락이 아주 찰나, 미세하게 멈칫했다. 그러나 이선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채헌 역시 시선을 악보에 고정한 채 연습을 이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벽이 세워진 것 같았다.

* * *

오후 두 시, 지하 2층 메인 보컬 레슨실.

“스톱.”

유리창 너머 믹싱 콘솔 앞에 앉아 있던 보컬 트레이너 한서진이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채헌은 입을 다물고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숨을 골랐다. 오디션에서 불렀던 알앤비 발라드 곡의 클라이맥스 직전이었다. 목 상태는 나쁘지 않았고, 음정과 박자 모두 평소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한서진의 표정은 차가웠다. 라우드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보컬 트레이닝을 총괄하는 그녀는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채헌 씨.”

한서진이 마이크를 쥐고 낮게 말했다.

“노래는 잘해. 음정도 정확하고, 성량도 풍부하고, 고음에서 성대 접촉도 안정적이야. 보컬 학원 강사나 가이드 보컬로는 만점자리 실력이지.”

칭찬 뒤에 이어질 말을 알기에 채헌의 심장이 바짝 졸아들었다.

“근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한서진이 콘솔 의자를 돌려 채헌을 똑바로 응시했다.

“정형화된 가창이야. 실용음악과 입시용 모범 답안을 보는 것 같아. 숨 쉬는 구간, 바이브레이션 주는 폭, 가성으로 전환하는 타이밍까지 전부 계산되어 있어. 틀린 곳은 하나도 없는데, 듣는 사람의 심장을 건드리는 찰나가 없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고쳐야 한다는 뜻이야. 여긴 학원이 아니라 기획사야. 노래를 ‘정석대로’ 잘하는 사람은 널렸어.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색깔이야. 채헌 씨 목소리엔 아직 그게 안 보여.”

한서진은 태블릿 PC의 화면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다음 주 금요일이 첫 월말평가야. 알고 있지? 신입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 과제 곡은 기존 팝송을 네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편곡해 부르는 거야. MR도 직접 준비하거나 만들어와야 해. 만약 이번에도 이렇게 밋밋한 교과서 같은 노래를 가져오면, 난 주저 없이 최하점을 줄 거야.”

“알겠습니다. 준비해 오겠습니다.”

“나가봐요. 다음 차례 들어오라고 하고.”

레슨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졌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땀에 젖은 목덜미를 식혔다.

교과서 같은 노래, 밋밋한 색깔.

한서진의 지적은 채헌이 지난 삼 년간 오디션 낙방을 거듭하며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은 장점이었지만, 동시에 개성이 없다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고시원 단칸방에서 소리를 지를 수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대 컨트롤에만 매달렸던 시간들이, 오히려 제 목소리를 틀 안에 가두어버린 꼴이었다.

‘편곡이라니…….’

채헌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장 피아노 반주 코드를 다시 짜고, 멜로디 라인을 새로 다듬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곡을 트렌디하게 만질 수 있는 프로듀싱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복도를 지나 연습생 휴게실로 향하는데, 자판기 옆에 모여 서 있던 연습생 세네 명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야, 오늘 새로 들어온 신입 있잖아. 4번 방으로 배정받았다며?”

“진짜? 선우 팀장님 미친 거 아니야? 거길 왜 신입한테 줘?”

“차이선 걔 또 난리 쳤겠네. 저번 주엔 데뷔조 애들이 곡 써달라고 들어갔다가 악보 다 찢기고 쫓겨났다던데.”

채헌은 발걸음을 멈추고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이선이 걔는 왜 아직도 방출 안 당하는지 몰라. 대표님이 직접 영입한 천재 프로듀서랍시고 오냐오냐해주니까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잖아.”

“말이 좋아 천재지, 지 성질머리 못 이겨서 타이틀곡 작업도 펑크 냈다며. 이번 달 평가에서도 곡 안 내면 진짜 계약 해지된다는 소문 있더라. 그러니까 4번 방에 틀어박혀서 밤새 피아노나 두들기고 있지.”

“신입 걔도 불쌍하다. 하필 엮여도 그런 시한폭탄이랑 엮이냐. 며칠이나 버티나 보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연습생들이 자리를 떴다.

채헌은 조용히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 차이선이라는 남자가 단순히 까칠한 성격 탓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그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밤 열한 시.

지하 2층의 불은 대부분 꺼져 있었고, 복도 끝의 비상구 유도등만이 희미한 초록빛을 내뿜고 있었다. 공용 연습실인 5번과 6번 방은 이미 자정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다른 방들은 데뷔조 연습생들의 레슨으로 잠겨 있었다.

채헌은 결국 다시 4번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달칵.’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방 안에 모니터 화면의 푸르스름한 빛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차이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낮에 입고 있던 검은 후드티 그대로,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건반 위에 얹힌 그의 긴 손가락은 건반을 누르지 못한 채 허공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네 마디짜리 피아노 루프 멜로디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몽환적이면서도 세련된 코드 진행이었지만, 메인 멜로디가 나와야 할 다섯 번째 마디에서 음악은 뚝 끊겼다. 그리고 다시 첫 마디로 돌아갔다.

반복, 또 반복.

이선은 마우스를 거칠게 내리쳤다.

“아, 씨발…… 왜 안 나와.”

낮게 짓씹는 욕설이 정적을 찢었다. 그의 등은 잔뜩 굳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카페인 음료 캔 세 개가 찌그러진 채 굴러다녔다.

채헌은 문가에 선 채 숨을 죽였다. 방 안의 공기는 낮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말을 걸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약고 같았다.

채헌은 조용히 발소리를 죽여 들어가 간이의자에 앉았다. 보면대를 펴고 악보를 올린 뒤, 태블릿 화면으로 과제 곡의 원곡을 틀었다. 이어폰을 끼려던 찰나, 이선의 스피커에서 다시 그 네 마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단, 다단, 다-라-.’

감각적인 마이너 코드 위로 얹히는 베이스 라인이 채헌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주 짧은 프레이즈였지만, 듣는 순간 귀를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곡은 여전히 다섯 번째 마디에서 길을 잃고 멈췄다.

이선이 머리를 감싸 쥐고 책상에 엎드렸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채헌은 멍하니 이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던 그 코드 진행을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만약 이 다음에 멜로디가 이어진다면, 어떤 흐름이어야 할까. 정형화된 공식대로라면 상행하는 스케일이 나와야겠지만, 이 곡의 서늘한 분위기에는 오히려 반음 떨어지는 가성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채헌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흐음-.”

아주 작게, 숨결에 실린 허밍이 채헌의 목구멍을 빠져나왔다.

네 마디 루프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 다섯 번째 마디의 빈 공간으로 채헌의 허밍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반음을 미끄러지듯 떨어뜨리며 가성으로 꺾여 올라가는 멜로디 라인이었다. 낮 동안 트레이너에게 지적받았던 ‘정석’을 벗어나, 본능적으로 이선의 코드에 맞춰 뱉어낸 소리였다.

‘탁.’

이선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채헌은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소리를 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깨달았다.

이선이 천천히 의자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이 채헌을 꿰뚫을 듯이 쳐다보았다.

“너.”

이선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그거 뭐야.”

“……죄송합니다.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사과 말고.”

이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채헌은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러나 좁은 방 안에서 물러설 곳은 벽밖에 없었다.

이선은 채헌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그에게서 짙은 커피 냄새와 서늘한 박하 향이 훅 풍겼다.

“방금 네가 부른 거. 다시 해 봐.”

“네?”

“다시 하라고. 다섯 번째 마디 뒤로 붙인 멜로디.”

이선의 눈빛은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지독한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채헌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낸 거라 기억이 잘…….”

이선이 뒤돌아 피아노 앞으로 가더니, 건반을 내리쳤다.

‘쾅-.’

조금 전 스피커에서 나오던 바로 그 네 마디의 코드 진행이 이선의 손끝에서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마디에서 이선은 건반을 누른 채 채헌을 돌아보았다.

“불러. 지금.”

이선의 낮은 명령조 목소리가 방음벽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