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날들의 연대기2회차

2회차 · 드림캐처

지워진 틈새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은 서늘했다. 만년필 잉크가 종이 섬유를 파고들며 굳어진 미세한 굴곡이 지문을 따라 생생하게 느껴졌다.

진우는 떨리는 숨을 억누르며 수첩의 책장을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

[10월 14일 월요일] 오전 9시. 연주 상공에 머물던 구름층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풍속계는 초속 4미터를 가리키고 있으나 나뭇가지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오 무렵, 시청 분수대의 물줄기가 공중에서 0.5초가량 정지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만 본 것인가?

[10월 15일 화요일] 오후 6시 40분. 퇴근길에 잿빛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미약한 치익 소리와 함께 기포가 일었다. 코를 찌르는 유황과 젖은 석회 냄새. 편의점 처마 밑으로 피신했다. 함께 비를 맞고 서 있던 행인 세 명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을 걸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십 분 뒤, 비가 그치자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걸어갔다.

[10월 16일 수요일] 청사 내 3층 복도의 벽면 타일 배치가 달라졌다. 원래 흰색과 회색의 체크무늬였으나 전부 짙은 남색으로 바뀌어 있다. 총무과 직원에게 타일 보수 공사를 언제 했느냐고 물었더니, 청사 준공 이래 10년 동안 줄곧 남색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기억이 틀린 것인가? 내가 미쳐 가고 있는 것인가?

[10월 17일 목요일] 새벽 3시 12분. 창밖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붉은 허공 한가운데, 도심 서쪽 상공을 세로로 가르는 거대한 검은 균열이 발생했다. 유리창이 깨질 듯한 극저주파 진동. 가슴이 옥죄어 숨을 쉴 수 없었다. 119에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음 대신 정적만 흘렀다. 균열은 약 40분간 유지되다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10월 18일 금요일] 출근길, 남구 교차로 모퉁이에 있던 5층짜리 붉은 벽돌 상가 건물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들어서 있었다. 공터에는 녹슨 철제 펜스가 쳐져 있었고, '출입 금지 - 사유지' 표지판의 페인트는 최소 10년 이상 방치된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어제까지 그 건물 1층 베이커리에서 빵을 샀었다. 영수증을 찾아보았으나 지갑 속 영수증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10월 19일 토요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도 모든 채널에서 백색 소음만 흘러나온다. 텔레비전 화면은 단색 조정 화면에서 멈춰 있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점점 느려지더니 완전히 멈췄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시계는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의 속도가 공간마다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10월 20일 일요일] 밤 11시 45분. 도심 전체의 전등이 일제히 꺼졌다. 암흑 속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이명이 울렸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뇌수를 직접 긁어내는 파동에 가까웠다. 창문 틈새로 눈이 멀 것 같은 순백의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기록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마지막 문장 끝에는 펜촉이 종이를 깊게 파고들며 잉크가 둥글게 번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섬광을 본 직후 진우는 의식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는 오늘 아침, 즉 10월 21일 월요일이었다.

진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수첩을 덮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혼자만의 망상도 아니었다. 물리적 매체에 새겨진 잉크의 흔적이 진우가 겪은 7일간의 붕괴를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이 멈췄고, 썩어 들어갔으며,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20일 밤의 거대한 섬광 이후, 도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완벽하게 수리된 상태'로 21일의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14일부터 20일까지의 시간을 통째로 잘라내고, 13일의 끝과 21일의 시작을 꿰매 붙여서.

"서 연구사."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수첩을 서류철 밑으로 밀어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제2보존국 1팀장 강태석이 돋보기안경 너머로 진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칼에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언제나 원리원칙을 강조하며 규정에서 단 1밀리미터도 벗어나지 않는 성미의 베테랑 공무원이었다.

"예, 팀장님."

"얼굴이 왜 그렇게 하얗게 질렸나? 어디 몸이 안 좋아?"

"아닙니다. 주말 동안 잠을 좀 설쳤더니 피로가 덜 풀린 것 같습니다."

강 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들고 있던 두툼한 결재판을 진우의 책상 위에 툭 내려놓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정신 안 차리면 한 주 내내 늘어져. 자, 이거 지난주 마감분 데이터 검증 보고서야. 오늘 정오까지 시청 전산운영과로 넘겨야 하니까 오류 검출 로그 확인하고 결재 올려."

진우는 결재판 표지에 붙은 라벨을 응시했다.

[2024년 10월 제3주차 행정데이터 통합 검증 보고서]

진우의 손가락이 서류철 모서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팀장님."

"왜, 또."

"이 보고서…… 대상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입니까?"

강 팀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서 연구사, 오늘 진짜 왜 이러나? 10월 7일 월요일부터 10월 13일 일요일까지잖아. 지난주 데이터. 자네가 지난주 금요일에 1차 취합해 둔 거."

"그렇다면…… 이번 주 보고서는 며칠부터 작성합니까?"

"오늘이 21일이니까, 21일부터 27일까지 작성하겠지. 당연한 걸 왜 묻나?"

진우는 숨을 죽이며 강 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노인의 눈동자 속에는 거짓이나 기만이 없었다. 오직 상식적인 질문에 상식적인 답을 내놓았을 뿐이라는 무심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팀장님,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의 3주차 데이터는 어디로 갔습니까?"

순간, 사무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가라앉았다.

타이핑을 치던 이민아 연구사의 손가락이 멈칫했고, 건너편 자리에서 출력물을 정리하던 박 주무관의 손길도 멎었다.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던 미세한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강 팀장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화가 난 표정도, 의아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마치 뇌 기능의 일부분이 갑작스러운 에러를 일으켜 정지해 버린 로봇처럼, 그의 얼굴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초점이 미세하게 흐려진 노인의 눈동자가 허공의 한 지점을 멍하니 응시했다.

"14일부터…… 20일……?"

강 팀장이 웅얼거리듯 중얼거렸다. 그의 입술 사이로 침이 고였다.

"14…… 20…… 그런…… 숫자는……"

그의 목소리는 녹음 테이프가 늘어진 것처럼 기괴하게 늘어졌다.

진우는 등골을 타고 차가운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강 팀장뿐만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민아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본 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마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비디오 테이프 속 인물들처럼 정지해 있었다.

공기 중에서 희미하게 타는 듯한 오존 냄새와 함께 미세한 고주파음이 울렸다.

'인식의 모순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진우는 직감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14일부터 20일까지의 부재'를 지적당하는 순간, 뇌 내의 인과율 회로가 마비되는 치명적인 오류를 겪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의 뇌와 기억 속에서 해당 기간의 개념을 물리적으로 도려내 버렸기 때문에, 그 공백을 건드리는 자극이 들어오면 사고 자체가 정지해 버리는 것이다.

진우는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팀장님. 제가 날짜를 착각했습니다. 10월 7일부터 13일까지 지난주 마감분, 바로 확인해서 올리겠습니다."

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지해 있던 사무실의 시간이 거짓말처럼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탁, 타닥. 키보드 치는 소리가 이어졌고, 강 팀장은 헛기침을 큼큼 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흠, 그래. 피곤하면 커피라도 한잔 타 마시고 오든가. 서둘러."

강 팀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결재판을 툭툭 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방금 전 자신이 겪었던 기괴한 인지 마비 현상조차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진우는 책상 밑에서 가방을 단단히 쥐었다.

이곳에 있는 디지털 데이터는 모두 오염되었다. 사람들의 뇌세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주시 전체가 거대한 거짓의 장막에 덮여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기록관리청의 연구사였다. 기록이 어떻게 보존되고, 어떻게 은폐되며, 어디에 진짜 원본이 숨겨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중앙 서버의 데이터는 통째로 패치되었어. 하지만 네트워크와 물리적으로 차단된 매체라면?'

중앙기록관리청 지하 3층에는 국가 중요 행정기록물의 영구 보존을 위한 '특수매체보존서고'가 존재했다.

그곳은 전자기 펄스 공격이나 사이버 테러, 전면적인 전산망 마비에 대비하여 모든 공공 기록을 마이크로필름과 무산성 종이, 그리고 단일 기록 광학 디스크 형태로 보관하는 지하 요새였다.

그 구역은 외부 네트워크는 물론 청사 내부 인트라넷과도 완전히 격리된 '물리적 망 분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매일 자정이 지나면 그날 생산된 모든 관보와 언론 보도, 시정 일지가 오프라인 광학 장비를 통해 마이크로필름으로 자동 현상되어 금고형 캐비닛에 보관되었다.

만약 세상에서 7일간의 시간이 실제로 흘렀고, 그것이 외부의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디지털 네트워크 상에서만 삭제된 것이라면, 그 지하 서고의 아날로그 필름과 종이에는 지워지지 않은 파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진우는 결심했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는 자리에 일어나 외투 주머니에 보안 인가증과 만년필, 그리고 검은색 가죽 수첩을 찔러 넣었다.

"이민아 연구사님, 저 지하 보존서고에 배가 상태 점검 좀 다녀오겠습니다. 국장님 찾으시면 30분 내로 복귀한다고 전해 주세요."

민아는 커피를 홀짝이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녀오세요. 아, 서 연구사님, 내려가는 김에 1층 로비 문서고에 들러서 이번 달 기록물 이관 명부 좀 가져다주시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올라올 때 챙겨 오죠."

진우는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반사되는 복도는 지나칠 정도로 고요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둣발 소리가 벽면을 타고 낮게 울렸다.

진우는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구 철문을 열자 서늘하고 퀴퀴한 콘크리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상계단 통로는 중앙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가 많은 곳이었다.

지하 1층, 지하 2층을 지나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참에 다다랐을 때, 진우의 걸음이 느려졌다.

지하 3층으로 통하는 방화문 앞에는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육중한 전자식 출입 통제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제3특수보존서고 - 인가자 외 출입 금지]

진우는 제2보존국 선임 연구사로서 해당 서고의 2등급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기 점검일이 아닌 평일 근무 시간에 단독으로 접근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 규정 위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