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혈만리1회차

1회차 · 샤인

단운령의 황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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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은괴 한 닢이 탁자에 놓였다.

주판알 소리가 멎었다.

여인은 그것을 집지 않았다. 손끝으로 끌어당겨 모서리만 보았다. 닳아 뭉개졌으나 낙인은 남아 있었다. 쇠를 겹쳐 세운 두 획. 십 년 전 강호의 장부에서 먹줄이 그어진 이름이었다.

"……오래된 쇠붙이네요."

"사람을 찾소."

"죽은 문파의 은자로요?"

"죽은 건 문파요. 나는 아니오."

주막의 소음이 한 자락 낮아졌다. 칼을 탁자에 올려둔 자들이 슬며시 고개를 틀었다. 단운령에서 오래 버틴 자들은 말보다 기척을 먼저 읽는다.

창가의 둘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들어올 때부터 잔을 비우지 않은 자들이었다.

삿갓은 벗겨지지 않았다. 대낮인데 그 그늘 아래는 밤처럼 어두웠다.

여기는 황풍루. 고갯마루에 걸린 삼거리 주막이자 하오문의 거점이었다. 강호의 소문이 이 탁자를 지나갔다. 그 소문을 파는 여인, 백소령이 은괴를 만지고 있었다.

"차 한 잔에 맹물 한 사발. 주문은 소박하시더니 셈은 소박하지 않네요."

"목을 축이러 온 것은 아니오."

"옷차림은 북방 흙먼지인데 기도는 중원의 고택 같으시고."

무결은 잔을 들었다. 미지근한 차가 목을 넘어갔다.

"값 대신 하나만 여쭐게요. 이 쇠붙이, 어디서 나셨어요?"

"주인에게서 받았소."

"그 주인은 지금 어디 계시죠?"

"묻힌 자리에."

백소령의 손끝이 은괴에서 떨어졌다.

죽은 문파의 물건을 파는 자는 강호에 널려 있다. 그런 자들은 말이 길다. 내력을 스스로 늘어놓는다. 이 사내는 넉 자로 끝냈다.

"십 년 전, 이 고개를 넘었던 무리들에 대해 묻고자 하오."

낮은 음성이었다. 그런데 주막 구석의 공기가 메말랐다.

"단운령의 바람은 하룻밤이면 발자국을 다 지워요. 그 시절 일은 묻어 두는 편이 신상에 이롭고요."

"묻힌 것을 파내는 것이 내 일이오."

"관부의 칼날도 못 닿고 강호의 도의조차 덮어 버리는 장막이 있어요. 은자 한 닢으로는 그 뒤편의 먼지 한 톨도 못 삽니다."

백소령이 은괴를 슬쩍 밀어냈다. 반응을 보려는 것이었다.

무결은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다만 등 뒤로 손을 올려 검은 천 아래의 칼자루를 스쳤다.

천 사이로 서릿발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탁자를 지나간 그것에 찻물이 굳었다.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

1화 삽화 — 게다가 그때 사라진 문파의 은자를 들고 와 십 년 전 이야기를 묻다니, 참으로 기묘하고도 특이한 손님이네요…

힐끔거리던 무뢰배들이 고개를 돌렸다. 깊이는 가늠하지 못했다.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다.

"……칼자루에 묻은 핏값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으시군요."

"각오는 이미 십 년 전에 끝났소. 값을 부르시오."

백소령이 은괴를 거두어 품에 넣었다.

"좋아요. 당장 다는 안 돼요. 우선 그 시절 단운령을 넘나든 수상한 마차 행렬부터 확인해 보죠. 달이 고개에 걸릴 때 다시 오세요."

일어서며 그녀가 덧붙였다.

"그 칼, 드러내지 마세요. 이 산등성이의 눈들은 생각보다 밝거든요."

백소령이 돌아선 뒤 주막은 도로 시끄러워졌다.

창가의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잔만 그대로였다. 여전히 가득 찬 채였다.

무결은 등 뒤로 손을 넘겨 검은 천 위를 쓸었다.

청강고검. 십 년 전 그날 밤, 사부가 마지막으로 제자의 손에 쥐여 준 철검문의 보검이었다.

1화 삽화 —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진 마차의 바퀴살이 썩어가고, 이름 없는 무지렁이와 도적패의 뼈가 흙더미 속에…

'살아라, 무결아. 살아서…… 검의 본질을 잊지 마라.'

그날 밤 철검문에서 백스물세 명이 죽었다. 반 각이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 십 년, 무결은 어둠 속에서 묵야검결을 뼈에 새겼다.

식어 버린 찻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달이 걸리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