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 드림캐처
빗속의 작은 숨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방 안의 공기는 언제나 같은 온도와 냄새를 품고 있었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북향 방. 이중으로 쳐둔 짙은 감색 암막 커튼은 계절의 흐름이나 하루의 시간대를 방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벽지 모서리마다 옅게 밴 곰팡이 냄새, 세탁한 지 오래되어 서걱거리는 침구의 먼지 냄새, 그리고 하은 자신이 내쉬는 건조한 숨결만이 사방 좁은 공간을 부유했다.
이곳은 안전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구석으로 파고들면 그 어떤 시선도 닿지 않았다. 복도를 쿵쾅거리며 지나가던 발소리도, 교실 뒤편에서 날아오던 구겨진 종이 뭉치와 키득거리던 웃음소리도, 제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게 만들던 서늘한 낙인도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숨이 막혔다. 스스로 걸어 잠근 문은 보호벽인 동시에 하은을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한 관짝과 다름없었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불규칙한 심장 박동처럼 방 안을 채우고 있던 오후,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타닥거리는 작은 소리였으나, 이내 굵어진 빗줄기가 창문을 깨부술 듯 거칠게 몰아쳤다. 늦가을의 폭우였다. 오래된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의 낡은 배수관이 빗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쿨럭거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하은은 무릎을 가슴팍까지 끌어안고 침대 헤드보드에 등을 바짝 붙였다. 헐렁한 회색 후드 집업의 소매를 길게 늘어뜨려 손가락 끝마디까지 완전히 덮었다. 앞머리는 눈을 다 가릴 정도로 자라 있었다. 머리카락 틈새로 보이는 방 안의 풍경은 흑백에 가까웠다.
달칵.
방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기척이 났다.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는 둔탁한 소리에 이어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하은아. 엄마 가게 나가기 전에 밥 차려두고 갈게. 국 식기 전에 먹어."
엄마, 민숙의 목소리였다. 목소리 끝에 매달린 피로와 미안함, 그리고 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민숙은 절대 문손잡이를 억지로 돌리지 않았다.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왜 방에서 나오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 침묵과 인내가 하은에게는 오히려 더 깊은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현관문이 닫히는 도어록 소리가 철컥 울리고 나서야 집 안은 다시 무거운 정적에 잠겼다. 하은은 방문을 열지 않았다. 식판 위의 국이 식어가든 말든 몸을 움직일 의지가 생겨나지 않았다. 자퇴서를 낸 지 꼭 1년이었다. 365일 동안 하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숨을 쉬고, 벽의 얼룩을 세고, 가끔 밀려오는 공황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쏴아아아—
창밖의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골목길 바닥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빗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문 밖에서 거칠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려 하은의 신경을 긁었다.
그때였다.
거센 빗소리와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 틈새로 낯선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낑.’
아주 작고 희미한 파열음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은은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잘못 들은 환청일 수도 있었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가끔 이명이나 환각 같은 소리에 시달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끄응… 낑, 낑.’
젖은 헝겊을 쥐어짜는 듯한, 헐떡임과 고통이 뒤섞인 소리였다. 소리는 창문 바로 아래, 좁은 골목길 어귀 쪽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하은은 마른침을 삼켰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조차 거대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날카로운 바늘처럼 하은의 귓바퀴를 파고들었다. 그것은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내는 신음이었다. 방치하면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호흡이었다.
하은은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발바닥에 닿는 장판의 냉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창가로 다가간 하은은 떨리는 손으로 암막 커튼의 한쪽 귀퉁이를 아주 조금 젖혔다. 눈이 부셨다. 흐린 날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시야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유리창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줄줄 흘러내려 바깥 풍경이 일그러져 보였다.
창틀의 잠금장치를 풀고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었다.
순간 늦가을의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비린 흙냄새와 차가운 물방울이 하은의 뺨을 때렸다. 소리가 훨씬 또렷해졌다.
소리의 근원은 하은의 집 빌라 담벼락 밑, 재활용 분리수거용 파란색 그물망과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는 구석이었다.
그곳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진흙 범벅이 된 누더기 천 조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미세하게 위아래로 들썩이고 있었다. 누런 털이 비에 흠뻑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작은 개였다. 왼쪽 귀는 반쯤 접혀 있었고, 뼈마디가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비가 퍼붓는 골목바닥에 배를 깔고 웅크린 개는 흘러내리는 빗물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녀석의 등과 뒷다리 부근에는 붉고 검은 생채기들이 엉망으로 엉겨 붙어 있었다. 다른 큰 개에게 물린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발길질에 채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빗물과 섞여 아스팔트 바닥으로 번져나갔다.
개는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지 턱을 젖은 바닥에 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차의 전조등 불빛이 번쩍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더 둥글게 말았다. 차가운 빗물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가도 녀석은 눈을 깜빡일 뿐 피할 곳을 찾지 못했다. 이미 피할 기력도, 도망칠 곳도 없는 상태였다.
하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하게 저려왔다. 저 개는 혼자였다. 아무도 녀석을 쳐다보지 않았고, 아무도 우산을 씌워주지 않았다. 차가운 빗속에서, 짓밟히고 쫓겨나 마침내 구석에 몰린 채 서서히 체온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치 1년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교실 바닥에 쏟아진 우유를 치우라며 등을 떠밀리던 날, 차가운 복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날. 수많은 발소리가 제 주변을 스쳐 지나갔지만, 누구 하나 손을 내밀지 않았던 그 지독한 고립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도와줘야 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문을 열고 나가야 해? 내가?’
동시에 거대한 공포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지난 1년간 하은이 쌓아 올린 유일한 방어막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었다. 밖에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누군가와 마주칠지도 몰랐다. 누군가 제 얼굴을 쳐다보고, 수군거리고,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숨이 가빠지고 손끝이 굳어졌다.
하은은 창문을 닫으려 했다.
외면하면 그만이었다. 커튼을 다시 치고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빗소리에 묻혀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창틀을 쥔 손가락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저대로 두면 죽는다. 그건 너무나 명백했다. 이 추위와 이 폭우 속에서 상처 입은 작은 생명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은 자신이 방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는 달랐다. 저 개는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숨이 끊어져가고 있었다.
‘싫어.’
하은은 이를 악물었다. 나처럼 두지 않을 거야. 누구도 오지 않는 어둠 속에 저렇게 버려두지 않을 거야.
하은은 뒤를 돌아 문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잠금장치를 찰칵 돌렸다. 1년 동안 거의 열리지 않았던 방 안쪽의 잠금 쇠가 풀리는 둔중한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엄마가 정갈하게 덮어두고 간 밥상이 거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은은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달려갔다. 수납장을 열어 가장 크고 보송보송한 목욕 타월 두 장을 꺼냈다. 그리고 현관으로 갔다.
신발장 구석에 놓인 낡은 운동화에 발을 쑤셔 넣었다. 오랫동안 신지 않아 뻣뻣해진 가죽이 발등을 압박했다.
우산꽂이에 꽂혀 있던 짙은 초록색 장우산을 집어 들었다. 우산 손잡이를 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덜덜거리는 턱을 맞물리며 하은은 도어록의 버튼을 눌렀다.
띠리링.
잠금이 풀리는 전자음이 기괴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하은은 문을 밀었다.
끼이익 하는 낡은 철문 소리와 함께, 1년 동안 차단했던 바깥세상의 공기가 훅 하고 쏟아져 들어왔다. 비바람의 습기와 차가운 냉기가 얼굴 전체를 덮쳤다. 복도는 어두웠지만, 저 멀리 1층 출입구 너머로 회색빛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계단을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계단 난간을 잡은 손바닥에 축축한 먼지가 묻어났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가 보면 어쩌지? 마주치면 어쩌지?’ 머릿속의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였지만, 하은은 가슴에 품은 수건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계단을 내달렸다.
빌라 1층 유리문을 밀고 나서는 순간, 거센 비가 하은의 몸을 때렸다.
우산을 폈다. 촤악 펼쳐진 우산 위로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낙하했다. 바람이 강해 우산대가 부러질 듯 휘청거렸다. 헐렁한 후드 집업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은은 빌라 뒤편 골목길로 돌아 들어갔다.
발이 웅덩이에 빠져 발목까지 차가운 물이 스며들었다.
담벼락 모퉁이를 돌자, 아까 창문에서 보았던 쓰레기 더미가 나타났다.
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은이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녀석의 귀가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하지만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지 진흙 바닥에 뺨을 붙인 채 겨우 눈동자만 굴려 하은을 올려다보았다.
빗물에 젖어 흐릿해진 갈색 눈동자였다. 그 눈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과, 극도의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크르르…’
하은이 세 발자국 앞까지 다가가자, 녀석이 굳게 닫혀 있던 주둥이를 미세하게 벌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잇몸을 드러내며 위협하려 했지만, 이빨마저 덜덜 떨리고 있어 위협이라기보다는 처절한 비명에 가까웠다. 녀석의 젖은 털 사이로 드러난 갈비뼈가 가쁘게 오르내렸다.
하은은 멈춰 섰다.
비가 우산 천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를 맹렬하게 때렸다. 하은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웅덩이의 흙탕물이 하은의 무릎과 바지통을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은은 우산을 기울여 개의 작은 몸 위로 쏟아지는 비를 먼저 막아주었다.
후두둑 떨어지던 빗방울이 차단되자, 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목구멍 안쪽에서 갸르릉거리는 경계의 소리를 냈지만, 녀석은 더 이상 으르렁거릴 기운도 없어 보였다.
"괜찮아……."
하은의 입술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1년 동안 거의 쓰지 않아 녹슨 쇳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안 때려……."
하은은 품에 안고 있던 마른 타월 하나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개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등 뒤는 축축한 시멘트 담벼락이었다. 더 물러설 곳이 없자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리며 꼬리를 다리 사이로 바짝 말아 넣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매를 맞을 때처럼 몸을 바짝 굳히는 행동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하은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솟구쳤다.
얼마나 맞았으면, 얼마나 쫓겨 다녔으면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질겁하며 눈을 감아버리는 걸까.
하은은 손을 허공에 멈췄다. 억지로 만지지 않았다. 대신 마른 타월을 개의 몸 위에 가만히 덮어주었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차가운 가죽 위에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천이 닿자, 개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녀석의 젖은 코가 흠칫거리며 수건의 냄새를 맡았다. 섬유유연제의 은은한 냄새와 사람의 손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하은은 남은 수건 한 장으로 개의 젖은 얼굴 주변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눈가에 엉겨 붙은 진흙과 빗물이 닦여 나가자, 녀석의 누런 털색이 조금 드러났다.
"집에 가자."
하은이 작게 속삭였다.
"여긴 너무 춥잖아."
개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하은을 올려다보았다. 왼쪽 접힌 귀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하은은 우산을 땅에 비스듬히 받쳐놓고, 두 손으로 수건에 싸인 개의 몸을 감싸 안아 올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뼈마디만 잡히는 몸무게는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안아 올리는 순간, 녀석의 상처 부위가 닿았는지 개가 ‘깽!’ 하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본능적으로 하은의 손목을 향해 주둥이를 가져갔지만, 하은이 물러서지 않고 가만히 자신을 받쳐주자 개는 물지 못하고 허공에서 턱을 딱딱 부딪쳤다. 그리고는 체념한 듯 하은의 품에 축 늘어졌다.
하은은 개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젖은 털에서 나는 비린내와 차가운 한기가 하은의 후드 집업을 뚫고 가슴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주 작고 빠른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콩닥, 콩닥, 콩닥, 콩닥.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는 작은 심장의 울림이 하은의 가슴벽을 두드렸다. 살아 있었다. 이 작고 볼품없는 생명이, 저를 향해 온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하은은 비바람을 등지고 우산을 든 채 돌아섰다.
골목길 저편에서 빌라 현관문까지의 거리는 불과 이십여 미터 남짓이었지만, 하은에게는 끝없는 사막을 건너는 것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비바람이 앞머리를 흩날렸고, 빗물이 눈을 찔렀다.
혹시라도 이웃 주민이 문을 열고 나오지 않을까, 차가 지나가며 경적을 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하지만 하은은 품에 안긴 생명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다. 자신이 무너지면 이 작은 것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자각이 하은의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철컥.
빌라 1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빗소리가 한 겹 멀어졌다.
하은은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2층, 3층을 지나 마침내 제 집 문 앞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