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 드림캐처
너를 살리기 위해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철컥.
현관문이 닫히며 밖의 비바람 소리가 둔탁하게 차단되었다. 현관 센서등이 주황빛으로 켜졌다가, 하은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깜빡거렸다.
하은은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현관 타일 바닥에 주저앉았다. 품에 안긴 작은 몸뚱이는 여전히 시계추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수건 틈새로 비린 흙탕물과 옅은 피 냄새가 훅 끼쳤다.
1년 만에 들이마신 바깥 공기는 찌를 듯이 차가웠고, 귓가에는 제 심장 소리가 이명처럼 쿵쾅거렸다. 전신을 짓누르는 공황의 무게에 주저앉을 뻔했으나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헐떡이는 작은 생명의 가쁜 숨결과 품 안을 파고드는 가느다란 떨림이, 흐트러지려던 하은의 정신을 강하게 현실에 붙잡아 두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은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인지, 품에 안긴 개에게 건네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은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거실 바닥에 빗물이 뚝뚝 떨어져 둥근 웅덩이를 만들었다. 평소의 하은이라면 거실조차도 낯설고 두려운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하은은 개를 품에 안은 채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지방을 넘어서자 익숙하고 어두운 공기가 하은을 맞이했다. 암막 커튼이 쳐진 북향 방. 침대와 책상, 낡은 옷장만이 덩그러니 놓인 이 좁은 방은 지난 1년 동안 하은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은은 바닥에 뒹굴던 낡은 담요를 서둘러 끌어당겼다. 책상 아래, 외풍이 덜 드는 구석 자리에 담요를 넓게 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바닥에 닿는 순간, 개는 화들짝 놀라며 네 다리를 바둥거렸다. 미끄러운 장판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털썩 쓰러지더니, 이내 벽 모서리에 등을 바짝 붙이고 웅크렸다. 왼쪽 접힌 귀는 뒤로 완전히 젖혀져 있었고, 꼬리는 아랫배 쪽으로 바짝 말려 들어가 보이지도 않았다.
개는 잔뜩 찌푸린 눈으로 방 안을 훑었다. 낯선 냄새, 낯선 공간, 그리고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낯선 인간. 녀석의 까만 코가 잘게 실룩거렸다. 턱을 바닥에 붙인 채, 하은의 손짓 하나하나를 극도로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가만히 있어 봐…… 닦아야 해."
하은은 젖은 후드 집업을 대충 벗어 던졌다. 땀과 빗물로 축축해진 티셔츠 차림으로 무릎걸음을 해 다가갔다.
욕실로 달려가 마른 수건 서너 장과 미지근한 물을 담은 대야, 구급상자를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자 좁은 방 안은 녀석의 가쁜 숨소리와 하은의 거친 호흡만으로 가득 찼다.
하은은 개의 몸에서 젖은 수건을 걷어냈다.
수건이 젖혀지자 처참한 몰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누런 털은 진흙과 오물이 엉겨 붙어 굳어 있었고,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는 가죽만 간신히 덮고 있는 형태였다. 척추뼈 마디마디가 계단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상처였다.
등허리부터 오른쪽 뒷다리로 이어지는 부위에 깊게 찢긴 열상이 있었다. 빗물에 씻겨 나가기는커녕 흙모래가 상처 틈새에 박혀 있었고, 상처 주변의 살점은 허옇게 불어 터진 채 붉은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짐승에게 물어뜯긴 자국인지, 날카로운 쇠붙이나 유리 조각에 긁힌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상처의 깊이가 얕지 않았다.
하은이 마른 수건을 들고 다가가자, 개가 순간적으로 목을 빳빳하게 세우며 ‘크르릉’ 하고 얕은 경계음을 냈다.
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며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녀석의 눈동자는 공포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겠다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제발 나를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는 처절한 방어벽이었다.
하은은 손을 멈췄다.
1년 전, 교실 바닥에서 자신이 지었던 표정이 겹쳐 보였다. 건드리지 마, 다가오지 마, 아무것도 묻지 마. 마음속으로 수없이 소리치며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날을 세우던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안 아프게 할게. 응? 흙만 털어내자."
하은은 시선을 개의 눈에 똑바로 맞추지 않고, 바닥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손을 높은 곳에서 뻗지 않고 바닥에 붙여 천천히 밀어 넣었다.
따뜻한 물에 적셔 꼭 짠 수건으로 개의 발끝부터 조심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발바닥 패드에 박힌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과 자갈을 떼어낼 때마다 개가 몸을 움찔거리며 짧은 비명을 삼켰다. 하지만 하은이 때리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자 개는 차츰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줄였다.
하은은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개의 얼굴 주변에 묻은 진흙을 닦아낼 때는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었다. 젖은 수건이 눈가와 귀 뒤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가자, 녀석의 빳빳하게 굳어 있던 목덜미 근육이 미세하게 풀렸다.
하지만 등 쪽의 상처에 수건이 닿았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깨갱!"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개가 고개를 홱 돌려 하은의 손등을 물었다.
완전히 힘을 주어 문 것은 아니었다. 이빨이 피부를 세게 눌렀지만 피가 날 정도로 살을 뚫지는 않았다. 그저 고통 때문에 튀어나온 조건반사였다. 개는 제 행동에 스스로 놀란 듯 즉시 입을 떼고는, 담요 구석으로 몸을 더 둥글게 말아 넣으며 눈치를 살폈다. 매가 날아올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잔뜩 웅크린 자세였다.
하은은 손등에 남은 붉은 이빨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아프다기보다는 가슴이 먹먹했다.
"괜찮아. 내가 미안해."
하은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구급상자에서 소독약을 꺼냈다.
집에 있는 것이라곤 자신이 가끔 쓰던 빨간 소독약과 후시딘 연고가 전부였다. 화장솜에 소독약을 듬뿍 묻혀 상처 부위에 살며시 떨어뜨렸다. 상처가 깊어 소독약이 닿자마자 하얀 거품이 부글거리며 일어났다. 개는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떨며 낑낑거렸지만, 더는 하은의 손을 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체념한 듯 하은의 무릎에 조심스럽게 주둥이를 기대어 올릴 뿐이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개의 코끝이 하은의 무릎 천을 적셨다.
그 작고 여린 온기가 닿는 순간, 하은의 목구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치밀었다. 이 개는 지금 자신을 온전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인간에게 매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은은 헤어드라이어를 제일 약한 바람으로 켜서 개의 젖은 털을 말려주었다.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에 처음에는 귀를 펄럭이며 기겁을 하더니, 따뜻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자 개는 차츰 긴장을 풀었다.
진흙과 빗물이 씻겨 나가자 녀석의 본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밝은 모래색의 부드러운 누런 털, 왼쪽으로 귀엽게 접힌 귀, 그리고 가슴팍에 작게 박힌 흰색 털 뭉치. 비록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말랐지만, 눈망울만큼은 맑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체온이 조금 돌아왔는지 개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드라이어를 끄고 방 안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하은은 개의 호흡이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쌕, 쌕, 쌕…….’
개의 가슴팍이 얕고 빠르게 오르내렸다.
하은이 손을 뻗어 개의 이마와 귀 뒤를 짚어보았다.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아까는 빗물 때문에 차가워서 몰랐지만, 녀석의 몸은 심한 열에 들끓고 있었다. 등허리의 찢긴 상처 주변은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었고, 손을 대지 않아도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상처 틈새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옅은 염증 냄새가 섞여 풍겼다.
단순한 찰과상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미 세균에 감염되었거나, 빗물 속의 오염물질 때문에 염증이 급격하게 번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은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어떡하지?’
빨간약과 연고 몇 번 바르는 것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상처가 곪아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은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고 검색창에 글자를 두드렸다.
[유기견 외상 열감] [강아지 깊은 상처 응급처치]
검색 결과로 뜨는 글들은 하나같이 절망적이었다.
‘길거리 생활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오염된 상처는 2차 감염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열이 나고 상처가 부어오르면 이미 염증이 진행된 상태이므로 즉시 동물병원에서 항생제 처치와 봉합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가정 내 소독만으로는 괴사를 막을 수 없으며, 방치할 경우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 다섯 글자가 하은의 시신경을 날카롭게 찔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은은 담요 위에 누워 있는 개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눈을 반쯤 감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혀를 입 밖으로 길게 빼물고 헐떡이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위태로웠다.
병원에 가야 한다.
그 생각 하나가 뇌리에 박히자마자, 거대한 공포의 파도가 하은의 전신을 덮쳤다.
‘내가? 병원에?’
방금 전 골목길에 나갔다 온 것만으로도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1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온 하은이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잠깐 나가는 것과,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오가는 병원에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마주칠 사람들의 시선. "쟤 하은이 아니야? 학교 그만두고 집에만 처박혀 있다더니." "왜 저러고 다녀? 꼴이 왜 저래?" 귓가에 환청처럼 쏟아지는 수군거림. 교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제 등 뒤를 찌르던 차가운 비웃음과 경멸에 찬 눈빛들이 눈앞에 어지럽게 번쩍였다.
하은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슴이 조여오며 산소가 부족해졌다. 헐떡이는 숨이 목구멍에서 걸려 컥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못 가. 난 못 나가.’
방 안은 안전했다. 이 문만 닫고 있으면 아무도 자신을 해치지 못했다. 비난도, 조롱도, 폭력도 이 암막 커튼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자신이 왜 밖으로 나가야 한단 말인가. 저 개는 길에서 주워온 것뿐이다. 길에 버려진 유기견 하나를 구하겠다고, 지난 1년 동안 제 목숨줄처럼 지켜온 안전지대를 버리고 다시 그 지옥 같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까?
하은은 통화 목록을 열었다. [엄마]라는 두 글자가 선명했다.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개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하은은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엄마는 지금 식당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터였다. 하은이 자퇴하고 방에 틀어박힌 뒤로, 민숙은 딸의 몫까지 감당하기 위해 하루 열두 시간씩 식당 주방에서 일했다. 퉁퉁 부은 다리를 두드리며 밤늦게 들어와 조용히 한숨을 쉬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전화를 걸면 엄마는 일을 팽개치고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하은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돈을 쓰고, 피눈물을 흘릴 터였다. 하은이 저지른 일을, 하은이 충동적으로 데려온 생명을 또다시 엄마의 짐으로 얹어줄 수는 없었다.
"끄응……."
바닥에서 가느다란 앓는 소리가 들렸다.
하은이 시선을 내렸다.
열에 들뜬 개가 몸을 뒤척이다가, 하은의 발목 쪽에 턱을 괴었다.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하은의 살갗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녀석은 감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하은의 발등을 거칠어진 혀로 힘없이 핥았다.
한 번, 두 번.
마치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아프니까 좀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은 손길이었다.
하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외면하면 죽는다.
만약 지금 자신이 무서워서 방 안에 숨어버린다면, 이 개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내일 아침 차갑게 굳어버린 시체를 마주하게 될 터였다.
‘그럼 나는?’
평생 이 방 안에서, 제 비겁함 때문에 죽어간 생명의 무게를 짊어진 채 썩어갈 것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또다시 문을 닫아걸고 방관자가 될 것인가?
교실에서 자신이 짓밟히고 있을 때, 문밖에서 고개를 돌리고 지나치던 수많은 아이들과 자신이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싫어.’
하은의 손가락이 바닥 장판을 강하게 긁었다.
‘그런 건 싫어.’
남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저 작은 것을 살리고 싶었다. 아무런 힘도 없이 바닥에 내쳐져 죽어가던 저것을, 과거의 자신과 똑같이 버림받았던 저 생명을 이대로 꺼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하은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켰다.
[동물병원]
검색창에 입력하자 화면에 몇 군데의 병원이 나타났다.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번화가에 있었다. 그런 곳까지 갈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손가락을 내려 지도를 확대했다.
골목길 끝, 빌라 단지를 벗어나 솔숲 소공원으로 이어지는 언덕배기 초입에 작은 핀 하나가 꽂혀 있었다.
[달빛 동물병원]
빌라에서 걸어서 10분. 빠른 걸음으로 가면 7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은은 스마트폰을 쥔 손을 꽉 쥐었다. 10분. 평범한 사람에게는 산책하듯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1년 동안 방 안에 갇혀 있던 하은에게는 천 리 길보다 멀고 험한 길이었다.
하지만 가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랍을 뒤져 마스크를 꺼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검은색 마스크를 귀에 걸고, 모자가 달린 두꺼운 검은색 후드 집업을 껴입었다.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긴 앞머리를 눈앞까지 늘어뜨려 시야를 좁혔다.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제 눈에 닿지 않도록.
방구석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수납박스를 비웠다. 그 안에 마른 담요와 수건을 두툼하게 깔았다.
"조금만 참아."
하은은 열에 들떠 늘어진 개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상자 안에 눕혔다.
개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하은이 그 위에 수건을 부드럽게 덮어주자 녀석은 이내 체념한 듯 상자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