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 뒤 세 시1회차

1회차 ·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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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교에 전학 갈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교과서도, 단정한 실내화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존재감 0퍼센트의 태도’다.

연우린은 늘 그 신조 하나로 험난한 학창 시절의 풍파를 건너왔다. 부모님의 잦은 이사 덕에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전학이었다. 매번 새로운 교실 문을 열 때마다 우린이 세우는 원칙은 단순 명료했다. 첫째, 튀지 않는다. 둘째, 교실 내 권력 구도에 휘말리지 않는다. 셋째, 묻어가는 먼지처럼 살다가 졸업장만 챙겨 떠난다.

“자, 서울에서 전학 온 연우린이다. 다들 사이좋게 지내라.”

담임 교사의 무미건조한 소개가 끝나자마자 우린은 고개를 정확히 15도 각도로 숙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의욕 없어 보이는 각도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호기심과 무관심이 반반쯤 섞인 눈빛들 사이를 지나 우린은 교실 맨 뒤쪽, 창가 바로 앞자리에 배정받았다. 완벽한 명당이었다. 앞사람의 널찍한 등판 뒤에 숨어 졸기 딱 좋았고, 선생님의 시야에서도 은근히 벗어나는 자리였다.

우린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번 학기 목표는 조용한 완주다.’

의자에 앉아 책가방에서 필통을 꺼내려던 순간, 옆 분단 맨 뒷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창틀에 턱을 괸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짝꿍 여학생이 우린의 시선을 눈치채고 조용히 턱짓을 했다.

“야, 전학생.”

“응?”

“그쪽 쳐다보지 마.”

“어?”

짝꿍의 이름표에는 ‘오나래’라고 적혀 있었다. 나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비어 있는 옆자리 책상을 가리켰다. 낙서 하나 없이 험악하게 긁힌 자국만 가득한 그 책상은, 의자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낡은 체육복이 걸려 있었다.

“누구 자리인데?”

우린이 소곤거리자 나래가 기겁을 하며 목소리를 더 낮췄다.

“백도진.”

“백도진?”

“우리 학교 미친개. 아니, 미친 호랑이. 아무튼 짐승이야. 일주일에 사흘은 지각하고 이틀은 결석하는데, 출석하는 날에도 수업은 절대 안 듣고 매점 뒤에서 사람 패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사람을 패?”

“지난달에 옆 학교 유도부 세 명이랑 시비 붙었는데 혼자서 셋 다 응급실 보냈대. 진짜야. 저기 책상에 긁힌 자국 보이지? 저것도 칼로 긁은 거라는 말이 있어. 그러니까 웬만하면 눈도 마주치지 마. 그게 이 학교에서 뼈 안 부러지고 살아남는 비법이야.”

우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치지 않는 것 정도는 우린의 특기였다. 애초에 얽힐 생각도 없었다. 사람을 패든 응급실을 보내든, 본인 인생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흘러가는 듯했다.

오후 세 시가 되기 전까지는.

오후 세 시. 6교시와 7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

이 시간은 고등학생의 뇌세포가 집단으로 파업을 선언하는 마의 구간이다. 5교시의 지루한 한국사 수업을 견뎌낸 우린의 머릿속은 온통 당류 부족 경고등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배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났고,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혈당이 떨어진다. 이대로 가다간 7교시 자율학습 시간에 기절한다.’

우린은 주머니에 든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세 장을 쥐었다. 살기 위해선 당분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 진한 당분이.

교실 문을 박차고 복도로 나선 우린은 계단을 전력 질주해 1층 본관 구석에 위치한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 앞은 이미 피바람 부는 전장이었다. 배고픈 남학생들이 매대 앞을 가득 메우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줌마! 불닭만두 두 개요!” “초코우유 다 나갔어요?”

우린은 전학 첫날의 소심한 태도를 잠시 벗어던졌다. 밥그릇 앞에서는 누구나 야수로 변하는 법이다. 우린은 틈새를 파고드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매대 구석의 빵 진열대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 오직 단 하나 남아 있었다.

해원고등학교 매점의 전설, 갓 입고되어 하루에 스무 개만 판다는 ‘연유크림 소보로빵’.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구워진 소보로 껍질 사이에 차갑고 달콤한 연유 크림이 터질 듯이 차 있는 궁극의 탄수화물 폭탄이었다.

“잡았다.”

우린은 재빠르게 빵과 딸기우유를 낚아채 계산대로 밀어 넣었다. 아주머니에게 삼천 원을 건네고 빵을 품에 안은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희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디서 먹지?’

교실로 들고 가면 나래를 비롯한 앞뒤 분단 아이들에게 한 입씩 뜯기다 껍데기만 남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먹는 건 인간의 존엄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고, 햇볕이 잘 들어 빵의 풍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은밀한 성소가 필요했다.

매점 문을 나선 우린의 눈에 건물 옆으로 난 좁다란 자갈길이 들어왔다.

매점 건물 뒤편, 쓰지 않는 체육 기자재 창고와 울창한 느티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후미진 공터였다. 낡은 플라스틱 상자들과 부서진 평상이 나뒹굴고 있어 언뜻 보기엔 폐기물 처리장 같았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는 볕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완벽해.’

우린은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자갈을 밟으며 매점 뒤편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무 냄새와 약간의 흙냄새, 그리고 매점 튀김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공터 구석에는 등받이가 반쯤 뜯겨 나간 낡은 가죽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린은 소파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빵 봉지를 뜯으려던 찰나, 소파 위에 덮여 있던 검은색 체육복 집업이 불쑥 꿈틀거렸다.

“……?”

우린은 손을 멈췄다.

바람이 분 게 아니었다. 체육복 아래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커다란 덩어리가 있었다.

스르륵, 옷자락이 흘러내리며 헝클어진 흑발이 드러났다. 길게 뻗은 다리는 낡은 소파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교복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어헤친 목덜미에 붉은 흉터가 길게 그어져 있었다.

그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베개 대신 팔을 괸 채,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우린은 굳어버렸다.

‘백도진.’

오늘 아침 나래가 경고했던 그 이름이 뇌리에 박혔다. 칼자국, 응급실, 사람을 패는 미친 호랑이. 그 모든 소문의 주인공이 지금 제 코앞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우린의 이성이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 지금 당장 뒤돌아서 교실로 튀어.’

하지만 우린의 손에 들린 연유크림 소보로빵이 묵직하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도망치려면 발소리를 내야 하고, 발밑은 온통 바스락거리는 자갈과 마른 나뭇가지 천지였다. 게다가 저 빵의 유혹을 뿌리치고 돌아가기엔 우린의 혈당 수치가 너무나 절박했다.

우린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뒤꿈치를 들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바삭.

마른 나뭇가지 하나가 발밑에서 경쾌하게 부러졌다.

적막이 감돌던 공터에 그 소리는 마치 폭죽처럼 울려 퍼졌다.

소파 위에 누워 있던 몸이 멈칫했다. 천천히, 아주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가 눈을 떴다.

나른하게 가라앉은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다가, 정확히 우린의 얼굴에 꽂혔다. 잠이 덜 깨 살벌하게 날이 선 시선이었다.

“……뭐야.”

낮게 잠긴 목소리가 긁히듯 흘러나왔다.

우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것 같았다.

“……안녕?”

우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인사였다.

백도진은 상체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소파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멍하니 우린을 바라보더니,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훤칠한 이마와 날카로운 턱선이 드러났다. 소문과는 달리 얼굴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 기가 막히게 잘생긴 축에 속했지만, 눈매가 주는 위압감은 소문 이상이었다.

“너 누구냐.”

“연우린. 오늘 전학 왔어.”

“근데 왜 남의 침실에 기어들어와서 난리야.”

“침실?”

우린은 황망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썩어가는 쓰레기장 구석의 낡은 소파였다.

“여기가 어떻게 침실이야? 학교 공용 부지잖아.”

말해놓고 우린은 제 혓바닥을 깨물 뻔했다. 미친개를 자극하지 말라던 나래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따지면 안 됐다. 죄송합니다, 잘못 찾아왔습니다 하고 넙죽 엎드려야 했다.

백도진이 피식 웃었다. 전혀 다정하지 않은, 맹수가 먹잇감을 보고 짓는 듯한 서늘한 미소였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전학생이라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엄청나게 컸다. 185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체구가 우린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역광을 받아 그의 그림자가 우린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우린은 뒷걸음질을 쳤다. 등을 돌려 도망갈 각을 재고 있는데, 백도진의 시선이 우린의 가슴팍 부근으로 떨어졌다.

정확히는, 우린이 품에 안고 있는 빵 봉지에.

“……”

백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빵에 머무는 시간이 1초, 2초, 3초를 넘어갔다.

꼬르륵.

공터의 정적을 깬 것은 거대한 천둥소리였다. 백도진의 배에서 울려 퍼진 웅장한 신호였다.

백도진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거, 연유크림 소보로냐?”

우린은 반사적으로 빵을 등 뒤로 숨겼다.

“아닌데요.”

“봉투에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잖아. 연유크림 소보로라고.”

“글씨를 잘못 읽으셨나 본데요. 이건 그냥 흙모래빵인데요.”

백도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제정신 아니지?”

“제정신인데요. 혈당이 떨어져서 제정신을 잃기 직전이긴 하지만요.”

백도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잠에서 막 깨어 잔뜩 곤두서 있던 신경이, 배고픔과 어이없음에 밀려 조금 풀어진 듯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오자 우린은 두 걸음 물러섰다.

“야.”

“왜요.”

“그거 마지막 남은 거였지.”

“제가 정당하게 돈 내고 산 제 재산입니다. 사유재산 침해는 헌법 제23조에 위배됩니다.”

“누가 뺏는댔냐?”

백도진이 턱을 치켜들었다.

“반 나눠.”

우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라고요?”

“반 나누자고. 내가 오늘 첫차 타고 와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 3교시부터 그거 사 먹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네가 채간 거잖아.”

“그건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은 거고요. 벼르고 있었으면 매점에 줄을 섰어야죠. 왜 소파에서 디비 자고 있었어요?”

말이 헛나왔다. ‘디비 자고’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우린은 제 수명이 10년쯤 줄어드는 감각을 느꼈다.

백도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 목덜미를 주물렀다. 살벌한 기운이 다시 피어오르는 듯했다.

“너, 내가 누군지 진짜 모르냐?”

“알아요. 백도진. 백도진 학생.”

“근데 말이 좀 짧다?”

“급해서 그럽니다. 그리고 저도 아침부터 굶어서 눈에 뵈는 게 없어요.”

우린은 품속의 빵을 더 꽉 쥐었다. 사람을 패든 유도부를 응급실에 보내든, 이 빵의 지분 100퍼센트는 온전히 연우린의 것이어야 했다. 우린의 인생관에서 식탐은 죄악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냉기류가 흘렀다.

오후 세 시 십오 분.

매점 뒤편의 낡은 공터에서, 전학 첫날의 평화주의자와 학교의 전설적인 불량배가 연유크림 소보로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