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 뒤 세 시2회차

2회차 · 파도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뙤약볕 아래에서, 우린과 도진의 시선이 허공에서 튀었다.

침묵은 무겁고, 빵 봉지는 차가웠으며, 도진의 뱃속에서 울린 천둥소리의 여운은 길었다.

우린은 뒤로 물러선 발끝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흙먼지를 일으키며 100미터 달리기 주자처럼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백도진의 긴 다리와 탄탄한 체격을 보건대, 세 걸음도 못 가 덜미를 잡힐 것이 자명했다.

‘싸우면 내가 진다. 도망쳐도 잡힌다. 그렇다면 남은 건 외교적 협상뿐이다.’

우린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등 뒤로 숨겼던 손을 아주 천천히, 폭발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밀었다. 비닐봉지 안에서 연유크림 소보로빵이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좋아요. 제안 하나 하죠.”

백도진의 한쪽 눈썹이 비스듬히 올라갔다.

“제안?”

“전치 6주짜리 폭행 사태로 번지는 것보단,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구호물자를 지원하는 편이 서로의 학창 생활에 이로울 것 같아서요.”

“말하는 뽄새 봐라. 내가 빵 하나 때문에 널 패서 전치 6주를 만들 것 같냐?”

“소문에 따르면 옆 학교 유도부 세 명도 빵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응급실에 갔다면서요. 예방접종은 원래 아프기 전에 맞는 법입니다.”

도진이 기가 차다는 듯 헛바죽을 지었다.

“어떤 놈이 그딴 소릴 지껄여.”

“출처는 익명 보장이 원칙이라 밝힐 수 없고요. 어쨌든 제 조건은 이겁니다. 빵은 절반으로 나눕니다. 대신, 이 딸기우유는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이후로 저를 아는 척하지 마십시오. 교실에서든 복도에서든, 저는 그쪽 눈에 안 보이는 투명 먼지입니다.”

우린은 품에서 딸기우유를 꺼내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결연한 눈빛으로 도진을 쳐다보았다.

도진은 우린의 얼굴과 손에 든 빵을 번갈아 보더니, 턱을 까딱였다.

“먼지 취급은 원래 내 전문인데. 반 가르기나 해. 크림 한쪽으로 쏠리면 무효다.”

“당연하죠. 저는 공정한 분배의 신봉자입니다.”

우린은 조심스럽게 빵 봉지를 뜯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향과 진한 연유 크림의 향기가 확 풍겼다. 두 사람의 위장이 동시에 요동쳤다. 우린은 떨리는 손으로 소보로빵의 양 끝을 잡았다.

황금빛 소보로 껍질이 바삭하게 부서지며, 하얗고 묵직한 연유 크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린은 숨을 멈추고 정확히 5 대 5의 비율을 가늠했다. 빵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을 맞추는 일은 수능 수리영역 문제를 푸는 것보다 높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왼쪽이 0.5밀리미터 정도 두꺼운가? 아니야, 오른쪽 크림이 더 꽉 찼어.’

도진 역시 상체를 숙이고 그 과정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야, 손 떨지 마. 껍데기 다 떨어진다.”

“조용히 하세요. 집중력 깨집니다.”

쩌억, 소리를 내며 빵이 두 동강 났다.

기적에 가까운 정밀함이었다. 양쪽 모두 크림이 풍성하게 배분되었고, 소보로 부스러기도 공평하게 나뉘었다.

우린은 오른손에 든 쪽을 도진에게 쑥 내밀었다.

“자요. 됐죠?”

도진은 우린의 손에 들린 빵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크게 벌려 베어 물었다.

바사삭, 하는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묵직한 크림이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잔뜩 찌푸려져 있던 도진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스르륵 풀렸다. 맹수가 사냥감을 뜯어먹을 때의 살벌함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굶주린 대형견이 간식을 허겁지겁 먹는 모양새였다.

우린 역시 뒤질세라 제 몫의 빵을 입에 욱여넣었다.

바삭한 소보로와 달콤하고 차가운 연유 크림이 혀끝에 닿는 순간, 뇌 속에서 도파민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오전 내내 곤두서 있던 신경이 노곤하게 녹아내렸다.

“하…… 살겠다.”

우린은 눈을 감고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도진은 순식간에 제 몫의 반 토막을 해치우더니, 손가락에 묻은 크림까지 쪽 빨아먹었다. 그러고는 턱을 괴고 낡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져 있는 우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야, 전학생.”

우린은 입안 가득 빵을 문 채 눈을 번쩍 떴다.

“으음?”

“너 이름이 뭐라고?”

우린은 빵을 꿀꺽 삼키고 주머니에서 딸기우유를 꺼내 빨대를 꽂았다.

“아까 말했잖아요. 연우린. 그리고 방금 계약 조건 잊으셨어요? 먼지 취급하기로 했잖아요.”

“내가 언제 계약서 썼냐? 구두 계약은 원래 효력 없어.”

“상법상 구두 계약도 엄연한 계약입니다. 신의성실의 원칙 몰라요?”

도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너 진짜 웃기는 애네. 서울 애들은 다 이러냐?”

“서울 애들이 다 이런 게 아니라, 정상적인 시민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렇습니다. 다 드셨으면 전 가보겠습니다. 곧 7교시 시작이에요.”

우린은 빨대를 문 채 냅다 뒤돌아섰다. 더 이상 이 위험인물과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 빵도 먹었으니 목표는 달성했다.

“연우린.”

등 뒤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우린의 발목을 잡았다.

우린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도진이 햇살을 받으며 나른하게 웃고 있었다. 흐트러진 흑발 사이로 드러난 눈매가 위험하게 반짝였다.

“내일 세 시에도 그거 사 와.”

“……네?”

“내일도 사 오라고. 오늘처럼 반 나누면, 이 자리 쓰는 거 눈감아줄 테니까.”

“내가 왜요? 여긴 학교 공용 부지라니까요?”

“공용 부지는 맞는데, 내 구역이거든. 내 허락 없이 들어오면 쫓겨나. 내일부터는 빵이 통행세야.”

우린은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미친개라는 소문은 과장이 섞였을지 몰라도, 양아치라는 사실만큼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싫은데요. 내일은 매점 근처에도 안 올 건데요.”

“그래? 그럼 내가 교실로 찾으러 가지 뭐. 2학년 3반이지?”

우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네 명찰 색깔이 파란색이잖아. 2학년. 그리고 오늘 전학 온 2학년은 3반 하나뿐이고. 나도 그 반이거든.”

도진이 씩 웃으며 교복 주머니에서 파란색 명찰을 꺼내 흔들었다. 거기에는 또렷하게 ‘백도진’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망했다.’

우린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같은 반이었다. 아침에 나래가 가리켰던 그 빈 책상의 주인이, 바로 눈앞의 이 인간이었다. 조용히 먼지처럼 살겠다는 고등학교 2학년의 원대한 꿈이, 고작 연유크림 소보로빵 한 조각 때문에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땡― 땡― 땡―

그때, 7교시 시작을 알리는 본관의 종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우린은 더 이상 따질 시간도 없이 홱 돌아섰다.

“통행세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집니다!”

도진을 향해 빽 소리를 지른 우린은 자갈밭을 박차고 교실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뒤편에서 백도진의 낮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교실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선 우린은 잽싸게 제자리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교복 소매로 닦아내자, 옆자리 짝꿍 오나래가 교과서를 펼치다 말고 우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야, 연우린. 너 어디 갔다 왔어?”

“매점.”

“매점? 얼굴이 왜 그렇게 사색이 됐냐? 매점 아주머니가 덤이라도 뺏어갔어?”

“아니…… 그냥 야생 맹수를 한 마리 마주쳐서.”

“맹수?”

나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7교시 담당인 수학 교사가 교탁을 탁탁 치는 소리에 앞을 바라보았다.

“자, 다들 자리 앉아라. 7교시 자율학습이니까 떠들지 말고 지난주에 나눠준 부교재 42페이지부터 풀어. 조는 놈은 교무실 청소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사각거리는 샤프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로 가득 찼다.

우린은 숨을 고르며 수학 부교재를 펼쳤다. 하지만 눈앞의 미적분 공식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매점 뒤편의 낡은 소파와, 빵을 오물거리며 ‘내일도 사 와’라고 뻔뻔하게 지껄이던 백도진의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같은 반이라니. 하필이면 왜 같은 반이야.’

우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동장 저편, 느티나무 그늘에 가려진 매점 뒤편은 여기서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드르륵―

교실 앞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지방을 넘는 육중한 발소리에 교실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사각거리던 샤프 소리도, 책장 넘기는 소리도, 심지어 수학 교사의 분필 소리마저 멈췄다.

교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우린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앞문으로 걸어 들어온 인물은, 교복 셔츠를 바지 밖으로 빼내고 가방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건들건들 걸어오는 백도진이었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그의 흐트러진 흑발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목덜미의 붉은 흉터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수학 교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계를 보았지만, 지각에 대해 크게 꾸짖지는 않았다. 그저 혀를 차며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백도진. 또 7교시 다 돼서 기어들어오냐. 빨리 네 자리로 가.”

“네.”

도진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는 분단 사이의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왔다.

아이들은 일제히 시선을 책상으로 내리깔았다. 누구 하나 도진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통로 주변의 공기마저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우린은 침을 꼴깍 삼키며 교과서 뒤로 얼굴을 반쯤 묻었다.

‘보지 마라. 지나쳐라. 나는 투명 먼지다. 나는 공기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린은 마음속으로 온갖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우린의 편이 아니었다.

터벅, 터벅, 다가오던 발소리가 우린의 책상 바로 옆에서 뚝 멈췄다.

우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교과서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린은 억지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도진이 삐딱하게 선 채, 우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장난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

교실 안의 몇몇 아이들이 곁눈질로 이쪽을 훔쳐보는 것이 느껴졌다. 짝꿍인 나래는 이미 사색이 되어 우린의 교복 치마 끝을 살짝 잡아당기고 있었다. ‘눈 마주치지 마’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하지만 도진은 교실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우린의 책상 모서리를 툭툭 쳤다.

“야.”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교실 뒷벽을 때렸다.

우린은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전학생 특유의 어리바리한 톤으로 대답했다.

“……네?”

도진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우린의 책상 위에 무언가를 툭 던져놓았다.

달그락.

책상 위로 굴러떨어진 것은, 매점에서 파는 막대사탕 하나였다. 딸기 맛이었다.

우린이 멍하니 사탕을 쳐다보자, 도진이 귓가에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유값.”

“……?”

“반쪽짜리 크림치곤 괜찮았어.”

그 말을 끝으로 도진은 우린의 옆 분단 맨 뒷자리, 낙서로 긁힌 제 책상으로 걸어가 의자를 거칠게 빼고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엎드려 잘 준비를 하듯 팔을 베개 삼아 책상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교실 안은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하지만 그 침묵의 결은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