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복권 1등에 당첨된다1회차

1회차 · 나비

인생 1등의 1등 당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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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남성의 표본을 뽑아 보라면 대략 세 갈래로 나뉜다. 취업 준비에 찌들어 있거나, 영혼을 쥐어짜며 출퇴근을 반복하거나, 혹은 인생 역전을 꿈꾸며 비트코인 캔들 차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거나.

하지만 강도진은 그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도진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날렵하게 뻗은 턱선과 짙은 눈썹,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콧날 아래로 시원스런 호선을 그리는 입매까지. 방금 일어난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했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오늘도 나라 구한 얼굴이네.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뻔뻔한 찬사였지만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사실이니까.

그의 축복받은 인생은 외모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강남 한복판에 5층짜리 상가 건물을 갖고 계셨고, 경기도 양평에는 주말마다 내려가 바비큐를 굽는 널찍한 전원주택이 있었다. 집안에 빚이라곤 단 1원도 없었으며,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만으로도 삼대가 떵떵거리며 소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재력이었다.

그런 그가 굳이 매일 아침 셔츠 깃을 세우고 출근길에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집에만 있으면 게을러지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과 사회적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유료 체험 학습인 셈이었다. 취업난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도진은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 마케팅 기획팀에 단번에 합격했다. 훤칠한 외모에 구김살 없는 태도, 면접관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시원시원한 말솜씨 덕분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도진아, 오늘도 적당히 하고 와. 힘들면 그냥 그만두고 아빠 건물 관리나 배워."

"에이, 팀장님이 저 없으면 기획안 못 쓴다고 울어요. 돈은 안 벌어도 인기는 벌어야죠."

도진은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며 현관을 나섰다.

회사에서의 도진은 그야말로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다. 돈에 쪼들리지 않으니 매사에 여유가 넘쳤고, 성격이 비비 꼬인 상사의 히스테리도 그냥 귀여운 투정 정도로 넘겨버리는 대인배였다. 일이 몰리면 불평 대신 커피를 쏘며 분위기를 띄웠고, 회식 자리에서는 빼는 법 없이 가장 유쾌하게 판을 깔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회사 안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금요일 오후, 사무실 안은 퇴근을 앞두고 묘한 긴장감과 피로감이 맴돌고 있었다. 도진은 빠른 손놀림으로 다음 주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모니터 앞을 정리했다.

그때, 옆자리에서 깊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내 인생. 이번 주도 야근에 찌들어 가는구나. 도진 씨, 인생이란 게 대체 뭘까?"

마케팅팀의 만년 과장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만성 피로의 화신인 박 과장이었다. 그의 모니터 구석에는 온갖 주식 차트와 함께 이번 주 로또 당첨 예상 번호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인생이 뭐 별거 있습니까, 과장님. 오늘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고 푹 자면 그게 인생이죠."

"도진 씨는 아직 젊고 잘생겨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거야. 나 봐라, 나.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치솟지, 애들 학원비는 끝이 없지. 나한테 남은 희망은 오직 이번 주 1등뿐이야."

박 과장은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로또 용지 몇 장을 꺼내며 눈을 번뜩였다.

"내가 지난밤에 기가 막힌 꿈을 꿨거든. 돼지가 금송아지를 타고 내 품으로 뛰어들더라고. 이건 백 퍼센트야. 도진 씨, 퇴근길에 우리 회사 앞 명당 들렀다 가자. 내가 좋은 기운 나눠줄 테니까 한 장 사 봐."

"전 그런 거 안 사도 이미 인생이 1등인데요?"

"으휴, 저 얄미운 놈! 저 얼굴에 돈까지 많으면 세상 불공평해서 신을 원망해야 돼."

박 과장이 장난스레 주먹을 쥐어 보였고, 도진은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입니다. 퇴근하고 제가 한 장 사드릴게요. 과장님 당첨되면 저 차 한 대 뽑아주시는 겁니다?"

"차가 문제냐! 내가 회사 사서 너 사장 시켜줄게!"

시계 바늘이 정확히 6시를 가리키자마자 두 사람은 나란히 짐을 챙겨 일어났다. 금요일 퇴근길의 공기는 언제나 달콤했다.

회사 근처 골목에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로또 명당 복권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가게 앞에는 퇴근길 직장인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다들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쥐고, 얼굴에는 절박함과 희망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 봐, 줄 긴 것 좀 봐. 여기가 1등만 열두 번 나온 곳이라니까. 기운이 달라, 기운이."

"그냥 사람들이 많이 사서 당첨 확률이 높은 거 아닐까요?"

"씁! 그런 현실적인 소리 할 거면 줄 서지 마! 복권은 낭만과 우주의 기운으로 사는 거야!"

박 과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5천 원짜리 수동 세 장과 자동 두 장을 능숙하게 구매했다. 도진은 지갑을 열었다가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발견했다.

'점심 먹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거네.'

평소 도진은 복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이 모자란 적도 없었거니와, 수백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에 기대는 행위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이 유쾌했고, 주머니 속 5천 원 지폐도 왠지 쓰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저도 자동 5천 원어치 하나만 주세요."

기계가 징 소리를 내며 종이 한 장을 뱉어냈다. 도진은 아무 생각 없이 인쇄된 종이를 받아 들었다. 번호 같은 건 확인조차 하지 않고 대충 지갑 안쪽에 쑤셔 넣었다.

"도진 씨, 만약에, 아주 만약에 1등 되면 뭐 할 거야?"

복권방을 나오며 박 과장이 물었다.

"글쎄요. 일단 내일 아침으로 특상 한우 꽃등심을 구워 먹고, 남는 돈으로는…… 요트나 한 대 사서 한강에 띄워볼까요?"

"야, 참 소박하면서도 돈 지랄의 끝판왕이네. 난 빚부터 다 갚고 회사 사직서부터 팀장 얼굴에 던질 거다."

"던지실 때 저 꼭 불러주세요. 동영상 찍어서 슬로비디오로 편집해 드릴게요."

"하하하! 좋아, 월요일에 보자고! 월요일에 내가 안 나오면 스위스로 튄 줄 알아라!"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토요일 저녁.

도진은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집 안에는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잘 숙성된 와인 한 잔과 치즈 플래터가 놓여 있었다. 주말의 여유를 온몸으로 만끽하던 도진은 문득 어제 퇴근길에 샀던 복권이 떠올랐다.

벽걸이 시계를 보니 시간은 저녁 8시 40분. 마침 생방송 복권 추첨이 막 끝났을 시간이었다.

"박 과장님은 지금쯤 울고 계실까, 웃고 계실까."

도진은 피식 웃으며 거실 협탁 위에 던져두었던 지갑에서 하얀 복권 종이를 꺼냈다. 스마트폰을 들어 포털 사이트에 '로또 당첨 번호'를 검색했다.

화면 상단에 이번 회차 1등 당첨 번호 여섯 개와 보너스 번호가 큼지막하게 떴다.

`07, 12, 19, 23, 31, 42 + 08`

도진은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며 무심하게 복권 용지의 첫 번째 줄, A열을 내려다보았다.

`A 자동 07 12 19 23 31 42`

꿀꺽.

와인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진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라?"

화면을 보고, 다시 종이를 보았다.

첫 번째 번호, 07. 맞다. 두 번째 번호, 12. 맞다. 세 번째 번호, 19. 맞다. 네 번째 번호, 23. 맞다. 다섯 번째 번호, 31. 맞다. 여섯 번째 번호, 42. 맞다.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스마트폰 화면 속 여섯 개의 숫자가 종이 위 첫 번째 줄에 완벽하게 일치해 있었다.

순간 정적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 흐르던 재즈 음악마저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잠깐만. 이거 인쇄 오류인가? 몰래카메라인가?"

도진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의 회차와 복권 용지에 적힌 회차를 몇 번이고 대조했다.

제1104회. 맞다. 추첨일. 오늘 날짜가 맞다.

도진은 스마트폰의 복권 앱을 켜서 용지 우측 상단의 큐알 코드를 스캔했다.

잠시 로딩 화면이 돌더니, 경쾌한 팡파르 소리와 함께 화면 가득 화려한 폭죽 애니메이션이 터져 나왔다.

[축하합니다!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첨 금액: 1,628,490,320원]

16억. 세금을 떼고도 통장에 11억이 넘는 꽁돈이 단숨에 꽂히는 액수였다.

도진은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기어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크하하하!"

웃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이내 온 거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유쾌한 폭소로 번졌다.

"아하하하! 이게 진짜 되네? 진짜 됐어!"

도진은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허공에 시원하게 어퍼컷을 날렸다. 소파 쿠션을 냅다 집어 던지며 거실 한가운데서 신나게 방방 뛰었다.

원래도 돈이 부족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쾌감이었다. 노력도 간절함도 없이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5천 원 한 장으로 거머쥔 완벽한 불로소득이자 16억짜리 인생 보너스였다.

"와, 나 진짜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거북선 노 젓던 1등 공신이었나?"

도진은 복권 용지를 양손으로 소중하게 받쳐 들며 공중으로 뽀뽀를 날렸다.

"박 과장님, 미안해서 어쩌나! 과장님 꿈에 나온 금송아지가 길을 잘못 들고 제 품으로 다이빙했습니다!"

절박한 이들에게는 눈물겨운 인생 역전이겠지만, 이미 여유만만한 도진에게는 그야말로 짜릿하고 통쾌한 유흥 그 자체였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고로 달려가 아껴두었던 최고급 샴페인을 꺼내 들었다. 펑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터진 코르크 마개가 천장을 때렸다.

"자, 인생 2막 화려하게 개막이다!"

샴페인을 병째로 들이켜며 도진은 기분 좋게 취기에 젖어 들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농협 본점으로 달려가 당첨금을 수령할 생각을 하니 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회사를 그만둘까? 아니지, 통장에 11억을 든든하게 꽂아두고 다니는 출근길은 또 얼마나 상쾌하고 스릴 넘칠까. 상사가 잔소리를 퍼부어도 속으로 '제 통장 잔고 보시면 기절하실 텐데' 하고 너그럽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