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복권 1등에 당첨된다2회차

2회차 · 나비

2주 연속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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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여덟 시 반.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협은행 본점 앞은 출근길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도진은 평소보다 말끔한 수트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채 회전문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1등 당첨자라면 얼굴을 꽁꽁 싸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둑고양이처럼 기어들어 오기 마련이었지만, 도진의 걸음걸이는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로비 안내 데스크에 다가간 도진이 품 안에서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살짝 내밀었다.

"복권 당첨금 수령하러 왔는데요."

안내 직원의 눈이 종이에 적힌 1등 마크를 확인하는 순간 휘둥그레졌다. 직원은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고객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복권사업팀 전용 상담실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자 따뜻한 녹차와 다과가 놓였다. 담당 직원이 복권 용지를 전산 단말기에 넣고 스캔을 마치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공손하게 서류를 내밀었다.

"제1104회 1등 당첨이 확실하십니다. 총당첨금 16억 2,849만 원 중 소득세와 주민세 33퍼센트를 원천 징수한 실 수령액은 10억 9,108만 원입니다. 입금받으실 계좌를 개설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은 은근슬쩍 온갖 금융 상품 팸플릿을 꺼내 들었다.

"고객님, 이 정도 목돈이시면 본행의 VIP 정기예금이나 고수익 펀드 상품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평생 자산 관리 플랜을 짜드릴 수 있는데……."

"아, 괜찮습니다. 그냥 보통예금 통장에 넣어주세요."

"예? 보통예금이요? 이자가 거의 안 붙는데요?"

"어차피 당장 쓸 일도 없고, 그냥 밥값이나 술값으로 조금씩 빼 쓰려고요."

직원은 입을 떡 벌렸다. 10억이 넘는 돈을 밥값이나 술값으로 빼 쓰겠다니. 하지만 고객의 뜻이 확고하자 직원은 군말 없이 신규 통장에 돈을 입금해 주었다.

잠시 후, 도진의 스마트폰이 징 울렸다.

[농협 입금: 1,091,088,510원] [잔액: 1,091,088,510원]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본 도진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번창하세요."

도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은행을 나섰다. 근처 편의점에서 1,500원짜리 캔커피 하나를 사서 홀짝이며 회사로 향했다. 반차를 쓸 필요도 없이 정시 출근 시각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한 상태였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앉은 박 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박 과장은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거의 반쯤 시체가 되어 있었다.

"과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도진이 활기차게 인사하며 다가가자, 박 과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려 있었다.

"도진 씨…… 좋은 아침은 무슨. 내 인생은 끝났어. 멸망했다고."

"주말에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금송아지인지 똥송아지인지 모를 그 빌어먹을 꿈! 번호가 단 하나도 안 맞았어! 다섯 장을 샀는데 어떻게 번호가 전부 빗나가냐고!"

박 과장은 책상을 쾅 치며 절규했다.

"난 또 1등 돼서 오늘 아침에 부장 뺨때기 때리고 사직서 던지는 상상까지 다 했는데! 결국 남은 건 카드값 고지서뿐이야…… 으흐흑."

도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박 과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주머니 속 통장에 박 과장이 그토록 염원하던 1등 당첨금이 얌전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었다.

"힘내십시오, 과장님. 원래 복권이란 게 그런 맛에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점심은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도진 씨밖에 없다, 정말. 도진 씨는 어땠어? 지난주에 산 거 맞아봤어?"

"저요? 에이, 저도 번호 몇 개 스쳐 지나가고 꽝이던데요, 뭐."

"그렇지? 거 봐, 그 명당도 다 거품이야. 사기꾼들이라니까."

박 과장은 도진도 꽝이라는 말에 묘한 동질감과 위안을 얻었는지 이내 표정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로도 도진의 일상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10억이 넘는 꽁돈이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외제차를 사거나 명품 시계를 두르고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원래도 집에 돈이 많았기에 돈 자랑에 대한 갈증 따위는 없었다. 도진은 평소처럼 쾌활하게 업무를 처리했고, 팀원들에게 간식을 쏘며 여유로운 회사 생활을 즐겼다. 오히려 통장 잔고가 든든하니 상사의 잔소리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무적의 멘탈이 완성되어 업무 스트레스는 제로에 수렴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주가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오후 5시 50분. 퇴근을 10분 앞두고 박 과장이 힐끔거리며 도진의 자리로 다가왔다.

"도진 씨. 오늘 약속 있나?"

"딱히 없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저기…… 퇴근하고 저번 주 그 복권방 한 번만 더 가지 않을래?"

도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과장님, 저번 주에 거품이라고 사기꾼들이라고 욕하셨잖아요."

"아, 그건 지난주고! 이번 주는 진짜 기운이 달라. 어젯밤에 내가 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꿈을 꿨단 말이지. 이건 진짜 용꿈이야. 2주 연속으로 이런 꿈을 꿀 리가 없어. 이번엔 진짜 1등 나온다."

"하하, 알겠습니다. 과장님 용꿈 한번 믿어보죠. 퇴근하고 가시죠."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도진은 흔쾌히 박 과장의 손을 잡고 회사 앞 복권방으로 향했다.

복권방 앞은 여전히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박 과장은 이번에도 심사숙고 끝에 마킹한 용지를 들이밀었고, 도진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지갑에 굴러다니던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사장님, 오늘도 자동 5천 원어치 부탁드립니다."

지잉, 소리와 함께 영수증 같은 복권 종이가 뽑혀 나왔다.

"도진 씨, 이번에 내가 1등 되면 진짜로 차 한 대 뽑아준다."

"좋습니다. 전 외제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주말을 맞이했다.

토요일 저녁 8시 45분.

도진은 친구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누웠다. 문득 협탁 위에 던져둔 복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또 되겠어? 벼락을 두 번 맞을 확률이라는데."

도진은 키득거리며 스마트폰으로 동행복권 사이트에 접속했다. 제1105회 당첨 번호가 막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03, 11, 16, 24, 38, 45 + 15`

도진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복권 종이를 꺼내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A 자동 03 11 16 24 38 45`

도진의 시선이 멈췄다.

방 안에 흐르던 에어컨 바람 소리가 순식간에 음소거된 것처럼 사라졌다.

"……응?"

도진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번호를 대조했다.

첫 번째, 03. 맞다. 두 번째, 11. 맞다. 세 번째, 16. 맞다. 네 번째, 24. 맞다. 다섯 번째, 38. 맞다. 여섯 번째, 45. 맞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여섯 개의 숫자가 완벽하게 들어맞아 있었다.

"미친."

도진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스마트폰 앱을 켜고 복권의 큐알 코드를 황급히 비췄다.

따르릉! 팡파르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화면.

[축하합니다!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첨 금액: 2,145,880,110원]

이번에는 무려 21억이었다.

"아니, 이게…… 이게 왜 또 돼?"

도진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쁜 감정을 넘어서서 공포와 황당함이 밀려왔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약 814만 분의 1이다. 한 사람이 살면서 한 번 맞을 확률도 기적에 가까운데, 2주 연속으로, 그것도 자동으로 5천 원씩 사서 연속 당첨될 확률은?

수학적으로 계산조차 되지 않는,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벼락을 연달아 두 번 맞은 꼴이었다.

"나 뭐 신내림 받았나? 아니면 외계인이 나한테 복권 번호를 쏴주고 있나?"

도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종이를 허공에 흔들었다.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폭풍은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월요일 아침, 도진은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서대문 농협 본점 복권사업팀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선 도진의 얼굴을 본 지난주의 그 담당 직원은 눈을 의심했다.

"어……? 저기, 고객님? 지난주에 오셨던 강도진 고객님 아니십니까? 혹시 통장에 무슨 문제라도……?"

"아, 그게 아니고요. 이번 주 것도 바꾸러 왔습니다."

도진이 덤덤하게 제1105회 1등 복권 용지를 내밀었다.

직원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받아 단말기에 긁었다. 삑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1등 당첨 내역과 당첨금 21억 원이 떴다.

쿵. 직원이 들고 있던 볼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이게…… 이게 말이 됩니까? 2주 연속이요? 동일인이?"

직원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복권사업팀 사무실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팀장부터 부서원들까지 전부 뛰쳐나와 도진의 얼굴과 복권 용지를 번갈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농협 측의 전산망을 통해 이 기괴한 소식은 순식간에 동행복권 본부와 언론사로 흘러 들어갔다.

그날 오후부터 인터넷은 그야말로 핵폭탄을 맞은 듯 뒤흔들렸다.

[속보: 대한민국 복권 역사상 최초! 동일 인물이 2주 연속 로또 1등 당첨!] [제1104회, 1105회 1등 당첨자 동일인 확인…… 총당첨금 37억 원!] [확률은 수십조 분의 일…… 기적인가, 시스템 해킹인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 창은 폭발했다.

- ㅋㅋㅋㅋㅋ 이게 나라냐? 조작질도 작작 해야지 대놓고 2주 연속으로 처먹네. - 내부자 비리 100%다. 검찰 조사 들어가라. - 상식적으로 조작할 거면 다른 사람 명의로 분산해서 타가지, 어떤 멍청이가 같은 놈 이름으로 2주 연속 타가냐? ㅋㅋㅋ - ㄹㅇ 조작범이면 진짜 희대의 빡대가리거나, 아니면 진짜 신이 내린 로또의 신이다. - 와, 도대체 전생에 지구를 몇 번 구해야 저게 가능하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복권위원회와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사상 초유의 '로또 조작설'을 해명하기 위해 복권 발매기 해킹 여부, 내부자 결탁 의혹 등을 전방위로 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폭풍의 중심에 선 도진은, 화요일 오전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으로 참고인 출석 요구를 받았다.

경찰서 취조실 안. 형사 두 명이 도진을 가운데 두고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강도진 씨.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복권위원회 내부 관계자 중에 친인척이 있습니까? 아니면 본사 서버에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셨습니까?"

도진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지었다.

"형사님, 제가 강남에 건물 있는 집 아들이고 종합상사 멀쩡히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뭐가 아쉬워서 감옥 갈 짓을 합니까? 그리고 다 자동이라니까요? 복권방 사장님이 기계에서 뽑아준 걸 제가 무슨 수로 조작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