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 소리
밑바닥에서 인간으로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축축한 흙탕물에 짓이겨진 내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붉게 물든 동굴 바닥에는 철갑을 두른 거대한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인간들이 ‘S급 게이트’라고 부르는 이 지옥의 최심부에서, 한때 차원을 호령하던 원정대는 전멸했다. 부러진 거검, 타버린 마법 지팡이, 그리고 찢겨나간 육신들 사이로 푸른빛의 짙은 마나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바위 틈새, 썩은 곰팡이와 배설물이 뒤섞인 어둠 속에 한 마리의 고블린이 웅크리고 있었다.
녹색의 쭈글쭈글한 피부, 볼품없이 튀어나온 배, 앙상한 팔다리. 게이트 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에서 상위 마수들의 찌꺼기나 갉아먹고 살아가던 최약체 잡몹. 그것이 본래의 그였다. 지능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그저 먹이를 보면 침을 흘리고, 강한 포식자의 기운이 느껴지면 구멍 속으로 숨는 것이 존재 이유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그 하찮은 뇌수를 뒤흔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배고파.’
본능이 명령하고 있었다. 동굴 중앙, 거대한 드래곤형 마수의 발톱에 가슴이 꿰뚫린 채 쓰러져 있는 한 인간. 새하얀 은발을 피로 물들인 채 죽어가는 남자의 가슴팍에서, 태양처럼 눈부신 황금빛 덩어리가 박동하고 있었다.
S급 헌터의 마나 핵.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마나의 정점이자, 육체가 사그라지며 응축된 순수한 에너지의 정수였다.
드래곤은 이미 다른 구역으로 사라졌고, 주변에는 찢긴 시체들뿐이었다. 고블린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바위 틈을 기어 나왔다. 타는 듯한 갈증과 맹목적인 식욕이 공포를 집어삼켰다.
철벅, 철벅.

피웅덩이를 밟으며 다가간 고블린은 남자의 시신 위에 올라탔다. 남자의 심장 부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는 살을 태울 듯 뜨거웠다. 고블린은 주저하지 않고 그 황금빛 핵을 향해 이빨을 박아 넣었다.
우두둑!
삼키는 순간, 지옥이 열렸다.
‘커헉!’
단 한 모금의 마력만으로도 고블린의 내장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종이컵에 댐의 방류수를 쏟아붓는 격이었다. 고블린의 하등한 육체는 S급 인간 헌터의 거대한 마나 그릇을 담아낼 수 없었다. 피부가 갈라지며 초록색 피가 솟구쳤고,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소멸. 자멸.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본능, 모든 것을 집어삼키겠다는 마수의 아귀 같은 탐욕이 기형적인 기적을 일으켰다.
[경고. 마나 수용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비정상적인 마나 포식 감지.] [생존을 위해 마나 핵의 강제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심핵 융합’이 발현됩니다.]
고블린의 작은 마나 핵이 S급 헌터의 황금빛 심핵과 뒤엉켰다. 인간의 영혼과 마수의 핵이 맹렬하게 충돌하며 하나의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융합의 결과는 기괴했다. 본래의 고블린 육체로는 이 힘을 버틸 수 없었기에, 심핵은 마나의 본래 주인인 ‘인간’의 형상으로 육체를 강제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뿌드득, 드득!
녹색의 피부가 벗겨지고 백옥 같은 새로운 피부가 돋아났다. 굽었던 척추가 바르게 펴지며 골격이 인간 성인 남성의 크기로 급격히 팽창했다. 찢어진 입은 단정하게 다물어졌고, 탁했던 눈동자는 서늘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남자의 머릿속에 인간의 지식, 언어, 감각, 그리고 문명의 파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신체 재구축 완료.] [고유 능력: ‘포식 변환’이 개화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피투성이가 된 바닥에서 한 청년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날카로운 턱선과 흑발,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금안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손톱 밑에 끼어 있던 흙먼지와 녹색의 땟국물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온 소리는 짐승의 괴성이 아닌, 낮고 또렷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강시우.
삼켜버린 헌터의 기억 파편 속에 남아 있던 이름 중 가장 또렷한 단어가 혀끝에 맴돌았다. 그는 더 이상 굴속을 기어 다니던 버러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인간도 아니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낯선 형태의 굶주림이 요동치고 있었다.
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나뒹구는 동족 고블린들의 찢겨진 시체, 그리고 하급 마수들의 사체가 보였다. 이전이었다면 동족이라 여겼을 것들이었으나, 지금 시우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단어로만 인식되었다.
‘음식.’
동족 의식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약육강식이 유일한 법인 차원에서 태어난 그에게, 눈앞의 마수들은 그저 흡수해야 할 영양분에 불과했다.
시우는 쓰러져 있던 하급 마수, 섀도우 하운드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마나를 싣자, 날카로운 손톱 대신 투명한 마력의 칼날이 형성되며 마수의 흉곽을 갈랐다.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보랏빛 마정(魔晶)을 꺼내 입에 넣었다.
와작.
유리처럼 부서진 마정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마자, 온몸의 혈관을 타고 새로운 에너지가 퍼져나갔다.
[하급 마수를 섭취했습니다.] [‘포식 변환’이 작동합니다. 근력과 민첩성이 소폭 상승합니다.]
“……맛은 없군.”
시우가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비리고 텁텁했다. 마나의 질이 지나치게 낮았다.
그때, 거대한 진동과 함께 동굴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게이트 내부의 공기가 붉게 물들며 시공간이 뒤틀렸다. 기한 내에 공략되지 못한 게이트의 최후, ‘오버플로우’의 전조였다. 차원의 벽이 찢어지며 외부 세계와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가야 한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갓 얻은 인간의 육체는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폭발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그가 지면을 박차자, 붉은 균열을 향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쿠콰쾅!
서울 외곽, 북한산 인근의 통제 구역.
허공에 떠 있던 거대한 차원의 균열이 기어이 터져 나가며 붉은빛의 마나 폭풍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아스팔트 도로가 뒤틀리고, 푸른 숲은 순식간에 보랏빛 안개로 뒤덮였다. 마나 오염으로 인해 지구의 물리 법칙이 일시적으로 붕괴하는 ‘침식 영역’이 형성된 것이다.
“전원 방어선 구축! 게이트가 터졌다! 오버플로우다!”
“지원 요청해! 협회 특수기동대 아직 도착 안 했어?!”
통제선 뒤편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헌터들과 협회 요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균열 속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늑대 형상의 마수들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괴물들이 도로를 질주하며 인간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 아비규환의 중심, 찢어진 차원의 틈새를 뚫고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상체가 반쯤 찢겨나간 헌터의 가죽 방어구를 대충 걸친 강시우였다. 그의 발걸음은 혼란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침착했다.
“크르르르!”
시우의 냄새를 맡은 거대한 마수 세 마리가 양옆에서 덮쳐들었다. C급 마수, 블러드 울프였다. 강철도 씹어 찢는 턱을 벌리고 달려드는 맹수들을 보며, 시우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거슬린다.’
시우의 금안이 가늘어졌다.
쾅!
시우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블러드 울프가 허공을 깨무는 찰나, 시우는 이미 가장 앞선 늑대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의 손이 늑대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우지끈!
순수한 완력만으로 거대한 늑대의 경추가 꺾여 나갔다. 시우는 반동을 이용해 손에 쥔 늑대의 시체를 휘둘러, 옆에서 달려들던 두 번째 늑대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콰앙!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기겁하며 멈춰 섰지만, 시우는 망설임 없이 파고들어 늑대의 가슴팍에 맨손을 찔러 넣었다.

푸욱!
갈비뼈를 부수고 심장 안의 마핵을 통째로 뜯어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핵을 손에 쥔 채, 시우는 그대로 입을 벌려 씹어 삼켰다.
오독, 오도독.
뼈와 살점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침식 영역의 굉음 속에서도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C급 마수 ‘블러드 울프’를 섭취했습니다.] [‘포식 변환’ 작동. 신체 능력이 강화됩니다.]
몸 안에서 마나가 돌며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허기가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질 낮은 생고기와 날것의 마나는 그저 허기를 달래는 연료에 불과했다.
시우는 피 묻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보랏빛 안개 너머로 번쩍이는 인공의 불빛들이 보였다. 높게 솟은 빌딩 숲, 도로를 가득 메운 철제 탈것들,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수많은 냄새들. 기름에 튀긴 고기 냄새, 달콤한 설탕 냄새, 따뜻하게 끓여낸 국물의 향.
인간의 문명.
죽은 S급 헌터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안락하고 풍요로운 세계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저곳이다.’
시우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축축하고 냄새나는 동굴에서 서로를 뜯어먹던 지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계. 마수를 사냥해 힘을 기르고, 저 따뜻하고 맛있는 것들을 영원히 누리며 살아가겠다. 그것이 인간의 몸과 지성을 얻은 시우가 품게 된 지극히 원초적이고 확고한 욕망이었다.
“……저기, 생존자냐?!”
거친 외침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시우를 향해 다가왔다.
구겨진 검은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중년 남성이 담배를 입에 문 채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헌터 협회 서울지부 감찰팀장, 박무진이었다. 그의 뒤로 마나 차폐 방패를 든 협회 기동대원들이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왔다.
박무진의 피곤에 찌든 눈동자가 시우의 발치에 널브러진 마수들의 처참한 시체, 그리고 시우의 피 묻은 입가를 훑었다.
“이거 참, 오버플로우 현장에서 산송장이 걸어 나왔네. 꼴을 보아하니 던전 안에 갇혀 있던 헌터 같은데…….”
박무진이 턱짓을 하자, 기동대원 한 명이 휴대용 마나 측정기를 들고 시우에게 접근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마나 파장 검사를 실시합니다.”
시우는 경계 태세를 풀지 않은 채 대원을 응시했다. 마음만 먹으면 눈앞의 인간 서넛의 목을 꺾는 것은 눈 깜짝할 새였다. 하지만 시우는 기억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 사회에 섞여 들어가 그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삐빅.
측정기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시우의 전신을 스캔했다.
기계의 화면에 복잡한 파형이 떠올랐다.
[마나 파장 분석 중…….] [인간 고유 생체 파형 일치.] [마나 정결도: 최상.] [감염 및 마수화 반응: 음성(정상).] [판정: 각성자(신원 미등록).]
마수 출신이라는 흔적은 시스템 어디에도 잡히지 않았다. S급 헌터와의 심핵 융합은 그의 마나 파장을 완벽하게 인간의 것으로 덮어씌웠다. 헌터 협회가 자랑하는 최첨단 마나 측정 시스템조차 그를 완벽한 인간 각성자로 공인한 것이다.
“……팀장님, 정상입니다. 마수화 징후 전혀 없습니다. 순수한 각성자 파형입니다. 다만 마력 측정이 불안정할 정도로 높습니다.”
대원의 보고에 박무진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미등록 각성자라. 이 난리통에 게이트 근처에서 각성이라도 하셨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