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 소리
소시지와 F급 신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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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우.”
피 묻은 입가를 슥 닦아내며 시우가 뱉어낸 대답은 더없이 짧고 담담했다.
북한산 통제 구역을 짓누르던 붉은 침식 영역의 안개 속에서, 박무진은 담배꽁초를 아스팔트 바닥에 비벼 끄며 혀를 찼다.
주변에는 C급 마수인 블러드 울프 세 마리가 목이 꺾이고 흉곽이 뜯겨나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중무장한 협회 기동대원들조차 진형을 갖추고 상대해야 할 맹수들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사내치고는, 그 눈빛이 지나칠 정도로 차분했다. 아니, 차분하다 못해 묘하게 초점이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꼬르륵—.
정적을 깬 것은 시우의 뱃속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천둥소리였다.
시우의 날카로운 금안이 박무진의 정장 안주머니를 꿰뚫을 듯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 주머니에 비죽 튀어나와 있는 비닐 포장지였다.
“……그건 뭡니까.”
“어? 아, 이거? 소시지인데.”
박무진이 얼떨결에 편의점 천하장사 소시지를 꺼내 들자, 시우의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어졌다.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훈제 향과 인공 조미료의 자극적인 냄새. 갓 재구성된 인간의 후각 신경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동족의 피비린내와는 전혀 다르다. 기름지고, 농밀하며, 미각을 자극하는 치명적인 향이다.’
시우의 진지한 시선에 박무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전까지 마수의 심장을 맨손으로 적출하던 미지의 강자가, 고작 천 원짜리 소시지 하나를 두고 당장이라도 덮칠 듯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프냐?”
“그렇습니다.”
“일단 차에 타. 서에 가서 신원 조회랑 정식 마나 검사부터 하고, 그 뒤에 뭐라도 먹여줄 테니까.”
박무진이 소시지 껍질을 까서 건네자, 시우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아 입에 넣었다.
와작.
달착지근한 어육과 짭조름한 치즈 조각이 혀끝에서 터졌다.
‘……!’
시우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지금껏 게이트 밑바닥에서 흙탕물에 젖은 벌레나 다른 마수가 먹다 남긴 썩은 내장을 씹어 삼키던 삶이었다. 조금 전 씹어 삼킨 블러드 울프의 마핵조차 비릿한 쇠 맛과 텁텁한 마력 찌꺼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길쭉한 주황색 막대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드러운 식감, 혀를 감싸는 감칠맛, 씹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경이로운 풍미.
‘인간 놈들…… 이런 걸 먹고 살았단 말인가?’
시우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스쳤다. 인간의 문명을 누리겠다는 막연한 욕망이, 방금 이 순간 ‘절대적인 사명’으로 격상되었다. 이 세계에 무조건 정착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맛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했다.
“더 없습니까?”
“협회 가면 구내식당 밥 무제한이다. 타기나 해.”
박무진의 말에 시우는 군말 없이 협회 호송용 밴 뒷좌석에 얌전히 올라탔다. 마치 커다란 맹수가 고기 한 점에 낚여 스스로 우리 안에 들어간 꼴이었다.
헌터 협회 서울지부 본청.

북한산 오버플로우 사태로 인해 본청 1층 로비는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했다. 피해 현황을 집계하는 방송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박무진이 시우를 대동하고 들어서자 협회 연구원들과 감찰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팀장님! 그 생존자가 이 사람입니까?”
하얀 가운을 입은 수석 연구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오버플로우 최심부에서 단신으로 걸어 나왔다면서요? 게다가 C급 마수들을 맨손으로 도륙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래. 현장 기동대 측정기로는 일단 인간 각성자 파형이 나왔는데, 수치가 워낙 기괴해서 말이지. 정밀 검사가 필요해.”
박무진의 보고에 연구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버플로우가 발생한 침식 영역의 중심부는 웬만한 B급 헌터 파티도 순식간에 몰살당하는 생지옥이다. 그런 곳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마수를 찢어 죽이며 걸어 나온 미등록 각성자라니.
“서, 설마…… 자연 각성한 미발견 S급인 건가?”
“최소 A급 상위권은 되겠지. 맨손으로 블러드 울프 두개골을 으스러뜨렸다니까.”
주변 직원들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로비를 가득 메웠다. 미등록 고등급 각성자의 등장은 협회 전체를 뒤흔들 대형 특종이었다. 대형 길드들이 거액의 계약금을 들고 달려들 것이 뻔했고, 협회로서도 강력한 전력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였다.
“일반 측정실로는 위험합니다! 마력 방출 충격으로 기계가 과부하될 수 있어요. 제1 특별정밀검사실로 모시겠습니다!”
수석 연구원은 호들갑을 떨며 시우를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최고 등급 검사실로 안내했다.
그곳은 국가급 헌터들의 마나를 측정할 때나 쓰이는 특수 격벽 룸이었다. 벽면 전체가 마나 차폐 합금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푸른빛의 ‘마나 공명 심핵석’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관제실에는 방폭 유리 너머로 수십 명의 연구원이 모여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했다.
“전원 충격 방지 프로토콜 가동! 방폭벽 올리고 마나 흡수율 최대로 설정해!”
연구원의 다급한 지시에 시우는 멀뚱히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란하군.’
인간들은 참으로 번거로운 절차를 좋아하는 족속이었다. 그냥 먹이를 사냥하고 영역을 차지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이런 차가운 방에 가두고 숫자를 매기려 들다니.
“강시우 씨! 중앙의 심핵석에 손을 얹고, 체내의 마나를 전력으로 뿜어내십시오!”
스피커 너머로 박무진의 진지한 목소리가 울렸다. 박무진 역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마른 침을 삼키며 방폭 유리 너머의 시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과연 어느 정도의 괴력이 튀어나올지…….’
시우는 연구원의 지시대로 거대한 푸른 보석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마나를 뿜어내라…….’
시우의 심장 깊은 곳에는 S급 헌터의 영혼과 마수의 핵이 뒤섞인 거대한 ‘심핵’이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방금 전의 무리한 신체 재구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에너지가 육체를 안정시키는 데 쓰이고 있었고, ‘포식 변환’ 고유 능력에 의해 마나의 본질이 깊숙이 갈무리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시우의 거대한 마나는 수면 아래 잠긴 거대한 빙산이었고,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그저 손톱만 한 얼음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시우는 인간의 섬세한 ‘마나 방출법’ 따위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숨을 내쉬듯 툭, 하고 체표면에 흐르는 잔여 마나를 흘려보냈을 뿐이다.

위이이잉—!
기계가 요란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방폭 룸 내부의 조명이 붉게 점멸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관제실의 연구원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모니터의 수치 그래프를 응시했다.
“온다! 마나 파동 폭증 카운트 들어갑니다!”
“3, 2, 1……!”
삐-익.
모두가 숨을 죽인 그 순간, 기계에서 맥빠진 전자음이 울렸다.
푸슈슈슉…….
마치 김빠진 콜라 캔을 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하게 빛나던 심핵석의 푸른빛이 깜빡거리더니 힘없이 꺼져버렸다.

정적.
관제실 내부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
수석 연구원이 멍하니 안경을 치켜올렸다.
모니터 화면에 뜬 분석 결과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너무나도 초라했다.
[측정 대상: 강시우] [마나 보유량: 12 MP (극소량)] [마나 순도: 측정 불가 (희박함)] [생체 출력 계수: 0.8] [최종 판정: F급 (전투 비적합 / 민간인 수준)]
“……F?”
연구원의 입에서 바보 같은 되물음이 튀어나왔다.
“기, 기계 고장인가? 야! 영점 조절 다시 해봐! 100억짜리 S급 전용 측정기가 왜 F급 수치를 띄워?!”
“저, 정밀 센서 정상 작동 중입니다! 오작동 아닙니다! 그냥…… 그냥 진짜로 마나가 없습니다!”
“말도 안 돼! 12 MP면 일반인이 각성하자마자 나오는 수치보다 낮잖아! 라이터 불 하나 겨우 켤 마나라고!”
연구원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모니터를 두들겨 댔다. 방폭벽을 올리고 충격 방지 프로토콜까지 가동하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는데, 결과가 고작 ‘동네 편의점 알바생 수준의 F급’이라니.
이것은 최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비장하게 뚜껑을 열었더니 눅눅한 뻥튀기 한 알이 들어있는 꼴이었다.
방폭 유리 너머에서 박무진이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야, 강시우.”
박무진이 인터폰을 잡고 헛웃음을 들이켰다.
“너…… C급 늑대 대가리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놈이, 마나가 12라고? 마술 부렸냐?”
시우는 여전히 손바닥을 뗀 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인터폰을 올려다보았다.
“마나가 부족합니까?”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바닥이야! 네 뱃속에 마나가 있기는 한 거냐? 도대체 그 완력은 어디서 나온 건데?!”
시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무식한 신체 스펙은 S급 헌터의 육체적 정수와 마수의 골격이 융합되어 태어난 ‘패시브 피지컬’이었지, 마나를 둘러서 쓰는 강화 마법이 아니었다. 게다가 흡수한 마나들은 모조리 세포 단위로 소화되어 ‘포식 변환’의 밑거름으로 녹아든 상태였다.
헌터 협회의 측정기는 마나의 순환량만을 측정할 뿐, 육체 자체가 괴물로 개조된 시우의 기괴한 생태를 읽어낼 방법이 없었다.
시우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F급이면 밥을 안 줍니까?”
“……뭐?”
“F급으로 판정되면, 아까 말한 구내식당 무제한 이용권은 취소되는 겁니까?”
박무진은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쪼개질 것 같았다.
오버플로우 현장에서 걸어 나와 마수를 도륙하던 미지의 괴인. 협회를 뒤흔들 구원투수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사내가, 지금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구내식당 밥’이었다.
“……하. 준다, 줘. F급이어도 신분증 나오면 밥은 공짜야, 이 미친놈아.”
박무진의 깊은 한숨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1시간 뒤, 협회 민원실.
탁.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 상담 창구 테이블 위로 던져졌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공인 신분증] 성명: 강시우 (Kang Si-woo) 등록 번호: 990415-1****** 인가 등급: F-Rank 소속: 미지정 (프리랜서)
시우는 자신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박힌 플라스틱 카드를 집어 들었다. 매끄럽고 단단한 감촉. 죽은 S급 헌터의 기억 파편 속에 존재하던 ‘시민의 권리’를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고 안락한 거처를 누릴 수 있다. 게이트의 진흙탕에서 이름도 없이 뒹굴던 고블린이, 번듯한 인간의 주민등록과 헌터 자격을 손에 넣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축하한다. 대한민국 최약체 F급 헌터로 공식 등재되셨어.”
옆자리에 앉은 박무진이 종이컵 커피를 홀짝이며 빈정거렸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우의 팔뚝을 힐끔거리는 눈빛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솔직히 말해봐라. 북한산에서 너 대신 다른 놈이 늑대 죽이고 튄 거 아니냐? 네 마나량으로는 슬라임 엉덩이도 못 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