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 샤인
공허 속의 결함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금속 해치 너머로 펼쳐진 다음 구역은 이전 방보다 세 배는 거대했다.
정육면체 형태의 거대한 공간 한가운데에는 붉게 달아오른 용암 타일이 체스판처럼 깔려 있었고, 그 위를 육중한 기계 골렘 셋이 지키고 있었다. 골렘들의 흉부에는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살벌한 톱니바퀴 마찰음을 뿜어냈다.
“크, 큭…… 저걸 어떻게 잡아? 우리 레벨 1짜리 기본 장비밖에 없다고!” “체력 바 좀 봐! 한 대만 맞아도 뼈도 안 남겠어!”
뒤따라온 테스터들이 새파랗게 질린 채 뒷걸음질을 쳤다.
골렘들의 머리 위에 뜬 정보는 경악스러웠다.
[LV. 25 - 폐기된 방어 프로토콜 골렘] [HP: 12,000 / 12,000]
튜토리얼 구간에 배치될 리 없는 고레벨 방어 기제였다. 일반적인 유저 스펙으로는 한 마리를 잡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바닥의 용암 타일은 일정 주기로 위치를 바꾸며 유저의 이동 반경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었다.
“어이, 까치집 형씨! 아까처럼 뭐 기술 없어? 저거 다 피해서 반대편 문으로 달리면 안 되나?” 험상궂은 도끼 유저가 식은땀을 흘리며 도진의 눈치를 살폈다.
도진은 까치집 머리를 긁적이며 무미건조한 눈으로 골렘들을 관찰했다.
“안 돼. 저놈들은 ‘하복-넥서스’ 엔진의 시야각 레이캐스팅(Raycasting) 기반으로 인식해. 저 반경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0.05초 만에 어그로가 튀어서 광역 화염을 쏜다. 아까처럼 프레임 스킵으로 지나가려고 해도 타격 범위가 너무 넓어서 중간에 갈려 나가.”
“그, 그럼 우린 다 죽는 거잖아!” 마법사 유저가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누가 죽는대?” 도진이 나른하게 대꾸하며 허리춤의 기본 목검을 고쳐 쥐었다.
“정상적으로 싸우면 전멸이지. 하지만 여긴 어디까지나 버려진 더미 데이터 룸이야. 최적화 패치조차 안 거친 쓰레기장이라고.”
도진의 시선이 골렘들의 발목 관절, 그리고 용암 타일과 일반 바닥 타일의 경계면으로 향했다.
QA 1팀 시절, 그가 올렸던 이슈 리포트 중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QA-2042-1104: 몬스터 넉백 시 고저차 판정 루프에 의한 메모리 오버플로우 및 경험치 중복 지급 현상.’ 처리 상태: WNF. 사유: 비정상적인 유저 밀치기 조작이 불가능한 튜토리얼 몬스터이므로 발생 가능성 전무.
도진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발생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결재 도장 찍은 놈이 누구였더라. 그래, 아마 그 빌어먹을 QA팀장이었지.”
도진은 주저 없이 용암 방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미쳤어! 들어가지 마!”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도진은 멈추지 않았다.
골렘 세 마리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도진에게 고정되었다.
위이이잉-!
쿠구구궁! 가장 가까운 골렘이 거대한 강철 주먹을 치켜들며 도진을 향해 돌진했다. 바닥의 용암 타일이 지열을 뿜어내며 캡슐 내부의 도진에게 생생한 열기 피드백을 전달했다. 피부가 타들어 갈 것 같은 뜨거움. 그러나 도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골렘의 이동 경로와 바닥 타일의 모서리 각도를 계산했다.
‘골렘의 이동 애니메이션 프레임은 초당 30프레임 고정.’ ‘바닥 타일 경계선 진입 시의 판정 박스는 2프레임 딜레이.’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도진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찰나.
쿵-!
도진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골렘의 왼쪽 다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기본 목검의 끝으로 골렘의 발목 이음매를 찌르는 동시에 자신의 발을 타일 틈새에 비스듬히 끼워 넣었다.
‘물리 충돌 박스 교차 버그.’
엔진 내부에서 골렘의 체적과 도진의 체적이 동일한 좌표에 겹치는 순간, 하복-넥서스 물리 엔진은 두 물체를 강제로 밀어내기 위해 비정상적인 반발력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도진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캐릭터를 좌측으로 15도 비틀며 앉기 모션을 연속으로 세 번 캔슬했다.
타닥, 탁!
푸쉬이이익-!
비정상적인 연산 루프가 발생했다. 골렘의 발목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거대한 강철 몸체가 용암 타일의 모서리에 끼인 채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덜덜덜덜덜덜!
초당 수백 번의 강제 낙하 판정과 피격 판정이 골렘의 몸체에 중첩되어 꽂혔다.
[경고: 엔티티 충돌 연산 과부하 발생.] [‘폐기된 방어 프로토콜 골렘’이 고저차 낙하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습니다.] [-999!] [-999!] [-999!]
“크, 크어어억……!” 골렘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단 2초 만에 거대한 체력이 바닥나며 산산조각이 났다.
콰아아앙!
그리고 시스템의 경험치 분배 루프가 꼬여버렸다. 연속 낙하 판정으로 인해 시스템은 골렘이 수백 번 죽은 것으로 오인했다.
[알림: ‘폐기된 방어 프로토콜 골렘’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오버플로우가 감지되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 1 -> LV. 7)]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 7 -> LV. 14)]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 14 -> LV. 20)]
찬란한 황금빛 레벨업 이펙트가 도진의 몸을 연달아 감쌌다.
“……뭐?” 입구에 멍하니 서 있던 테스터들의 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 레벨이 20이 됐다고? 튜토리얼 룸에서?!”
도진은 솟구치는 스탯 포인트를 모조리 민첩(AGI)과 지능(INT)에 몰아주며, 남아 있는 두 마리의 골렘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다음.”
도진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민첩 스탯이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프레임 스킵 글리치의 발동 속도는 기괴할 정도로 빨라졌다.
슈슉!
잔상을 남기며 쇄도한 도진은 나머지 두 골렘의 충돌 박스를 연달아 비틀어 용암 타일에 처박았다.
콰앙! 콰지지직!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 20 -> LV. 26)]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 26 -> LV. 31)]
단 1분 만에 튜토리얼 최하층의 고레벨 몬스터 셋이 고철 덩어리로 변했고, 도진의 레벨은 이미 30을 돌파해 있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스테이터스의 힘. 오감 피드백 100% 환경이었기에, 비정상적으로 강화된 신체 감각이 뇌리를 짜릿하게 자극했다.
“자, 문 열렸다. 따라올 놈들은 뛰어.”
도진이 굳게 닫혀 있던 반대편 대형 해치를 발로 툭 차올렸다. 잠금장치가 박살 나며 거대한 틈이 벌어졌다.
* * *
같은 시각, 아르카디아 운영 본사 지하 3층 중앙 관제실.
수십 대의 대형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채운 통제실 내부는 얼음장처럼 서늘했다. 수십 명의 오퍼레이터들이 분주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탁, 탁, 탁.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와 함께, 칼단발에 차가운 무테안경을 쓴 여자가 중앙 통제석으로 다가왔다. 아르카디아 운영총괄 실장, 최수아였다. 각 잡힌 검은 정장 차림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메인 모니터를 응시했다.
“보고해. 격리 구역 ‘큐브’의 생체 데이터 수집률은?”
수아의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담당 오퍼레이터가 마른침을 삼켰다.
“현재 4번 섹터까지 가동 중입니다. 접속자 2,000명 중 사망 판정으로 인한 강제 셧다운 유저는 412명…… 신경계 과부하 수치는 한계치 직전입니다.”
“피드백 100% 상태에서의 뇌파 동기화가 아직 불안정해. 코어 AI ‘오라클’이 차세대 신경망을 완성하려면 더 극단적인 스트레스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지?”
수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용자들의 안전 따위는 그녀의 안중에 없었다. 정식 오픈 전, 상층부가 요구한 완전 몰입형 AI의 완성도와 지표만이 그녀가 추구하는 전부였다.
그때, 모니터 한구석에서 붉은색 경고창이 요란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SYSTEM ALERT: 격리 구역 #004-B 비정상적 트래픽 감지] [엔티티 물리 충돌 오류(Crash Collision) 연속 발생] [비인가 레벨업 감지: 테스터 ‘한도진’ (LV. 1 -> LV. 31)]
“……뭐?” 수아의 무테안경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굳었다.
오퍼레이터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이, 이게 무슨……! 격리 구역에 투입된 더미 골렘들이 단 1분 만에 전멸했습니다! 유저 한 명이 시스템 오류를 유도해 경험치를 오버플로우시키고 있습니다!”
“화면 띄워.”
수아의 서슬 퍼런 명령에 메인 화면에 큐브 내부의 영상이 송출되었다.
까치집 머리에 짙은 다크서클,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사내. 그는 정교하고 기괴한 스텝으로 물리 엔진의 충돌 판정을 무시하며 다음 구역의 차단벽을 거침없이 부수고 있었다.
“……한도진?”
수아의 입술에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며칠 전, 상층부의 압박으로 사직서를 받아냈던 QA 1팀 수석. 분명 사내 권한을 모두 박탈하고 내쫓았을 텐데, 그가 어떻게 이 비공개 격리 서버에 접속해 있는 것인가.
“외부 해킹 툴을 사용하는 겁니까? 당장 IP 추적해서 영구 정지 및 강제 셧다운 때리겠습니다!” 오퍼레이터가 키보드에 손을 올리자, 수아가 날카롭게 가로막았다.
“잠깐.”
수아의 눈이 모니터에 찍히는 패킷 로그를 빠르게 훑었다.
외부 인젝션 코드 없음. 메모리 변조 없음. DLL 후킹 없음. 모든 조작은 오직 아르카디아 클라이언트 내부의 표준 패킷만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핵이 아니야.” 수아가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치켜올렸다.
“저 남자는…… 클라이언트의 물리 엔진 결함만으로 시스템을 비틀고 있어. 저놈이 과거에 작성했던 ‘수정 거부(WNF)’ 버그 리포트 그대로.”
“그,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저 자가 계속 격리 구역의 더미들을 파괴하면 오라클의 데이터 수집 루프가 깨집니다! 정규 필드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비공개 테스트의 격리벽 전체가 무너집니다!”
수아는 턱을 괴고 화면 속의 도진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도진을 여기서 강제 종료시키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그가 파괴하고 있는 버그 경로들은 오라클 AI가 미처 학습하지 못한 시스템의 치명적인 결함들이었다.
‘네가 어디까지 뚫을 수 있는지 보겠어, 한도진.’
수아의 입술에 서늘한 호선이 그려졌다. 그녀는 오퍼레이터의 콘솔로 손을 뻗어 몇 가지 명령어를 직접 입력했다.
“실장님? 뭘 하시는……?”
“격리 구역 제5섹터의 ‘림보 격벽’을 활성화해. 난이도를 최대로 올려.”
“예?! 림보 격벽은 아직 미완성 구역이라 맵 렌더링조차 안 끝난 공허 공간입니다! 저기로 보내면 뇌 신경이 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도 못 버티면 도태될 뿐이야.” 수아가 차갑게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입력한 명령어의 끝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미세한 시스템 파라미터 수정이 은밀하게 덧붙여져 있었다.
[림보 구역 내부: 비상 탈출용 디버그 포털 트리거 조건 완화]
수아는 속으로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래 어디 살아서 기어 나와 봐.'
* * *
쿵-!
도진이 다섯 번째 큐브의 금속 문을 발로 차서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금까지의 방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없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암흑과 깨져나간 폴리곤 텍스처, 그리고 무수한 녹색 시스템 에러 코드가 빗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기괴한 공간.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공중에 위태롭게 떠 있는 부서진 바닥 타일 몇 조각뿐이었다.
“히익…… 여, 여긴 또 뭐야? 바닥이 없어!” 뒤따라오던 생존 유저들이 기겁하며 문틀을 붙잡았다.
도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림보 구역(더미 데이터 룸)이군.”
개발 단계에서 맵 데이터를 렌더링하다가 깨졌거나, 삭제 처리가 덜 된 채 서버 한구석에 방치된 공허의 공간. 이곳에 떨어지면 캐릭터는 무한 낙하 판정에 빠져 신경계가 극심한 현기증과 감각 충격을 받게 된다.
그때, 허공의 에러 코드들이 뭉치며 기괴한 형체의 거대한 데이터 괴물을 빚어냈다.
크아아아아-!
형태조차 불분명한 검은 노이즈 덩어리. 그 괴물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스템 압력은 이전의 골렘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SYSTEM: 격리 구역 최종 방어 프로토콜 ‘엔트로피’ 강림] [위험도: 측정 불가] [경고: 본 구역에서의 사망 시 생체 신호 복구 불가 위험.]
“측정 불가라고……? 야, 도진인지 뭔지 하는 양반! 저건 버그로도 못 잡는 거 아냐?!” 도끼 유저가 절망에 차서 소리쳤다.
도진은 대답 없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레벨 31. 민첩과 지능에 스탯을 쏟아부었지만, 저 거대한 데이터 덩어리를 정공법으로 깎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운영팀에서 손을 썼군.’
이것은 자연 발생한 맵 결함이 아니었다. 누군가 관제실에서 의도적으로 림보 구역의 차단벽을 열어젖히고 자신을 이곳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최수아…… 날 여기서 확실하게 매장시키겠다 이건가?’
하지만 도진은 이상한 점을 놓치지 않았다. 괴물의 뒤편, 칠흑 같은 허공 한가운데에 미세하게 깜빡이는 푸른색 픽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