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녀님의 몽둥이는 참지 않는다.1회차

1회차 · 소리

피눈물 끝에 눈을 뜨다

이 글에는 생성형 AI 가 쓴 부분이 있습니다 자세히

시어머니 박순임의 목소리는 언제나 신경을 긁는 쇳소리를 냈다.

"야, 윤서진! 너 오늘 친정아버지 제사라고 일찍 기어 나갈 생각 꿈도 꾸지 마라. 우리 민철이 오늘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 끝내고 온댔어. 보양식으로 민물장어 사다가 고아 놓고, 집 안 청소 싹 해놓고 나가."

식탁 위에 놓인 핸드폰 너머로 쏟아지는 악다구니에 서진은 마른세수를 했다. 손바닥에 닿는 뺨이 까칠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른여덟.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건만, 거울 속에는 생기라곤 한 점도 없는 파리한 몰골의 여자가 서 있었다.

결혼한 지 십 년이었다. 그 십 년 동안 윤서진의 삶은 착취와 희생 그 자체였다. 남편 강민철이 사업을 한답시고 날려 먹은 빚 삼억을 갚기 위해 서진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며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 낮에는 학원 강사로, 밤에는 번역 일과 대리운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땀 흘려 남편 빚을 다 갚고, 시어머니 박순임의 무릎 관절염 수술비에 생활비까지 꼬박꼬박 대주었다. 그뿐인가. 지금 살고 있는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 역시 서진이 친정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과 제 피땀을 갈아 넣어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당연하다는 듯한 멸시와 끝없는 요구뿐이었다.

"내 말 듣고 있어? 대답을 안 해, 이 년이! 싹수없이 어른이 말하는데 입을 꾹 닫고 있어?"

"어머니. 저 오늘 병원 정기검진 날이에요. 위궤양이 심해져서 조직검사 결과 들으러 가야 한다고 지난주부터 말씀드렸잖아요."

"뭐? 위궤양? 참나, 유난은 혼자 다 떨어요. 속 좀 쓰린 거 가지고 병원은 무슨 놈의 병원이야! 돈이 썩어 나냐? 그 돈 있으면 우리 민철이 비타민이나 한 통 더 사 먹여라. 남자가 밖에서 돈 버느라 속이 문드러지는데, 지 아픈 것만 알아가지고."

속이 뒤틀려 피를 토할 것 같은 통증이 명치를 찔렀다. 돈을 번 건 강민철이 아니라 서진 자신이었다. 강민철은 빚을 털어낸 뒤 번듯한 중소기업에 낙하산으로 들어가 월급 이백만 원 남짓을 받으며, 그마저도 제 용돈으로 다 쓰고 생활비 한 푼 보탠 적이 없었다.

"끊을게요. 병원 늦어요."

"야! 야! 이 년이 시애미 말을 끊어?"

전화를 거칠게 끊어버린 서진은 식탁을 짚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명치끝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진통제를 두 알 삼켰다.

병원에서 들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위암 3기. 의사는 당장 입원해서 항암 치료와 수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멍한 머리로 병원을 나선 서진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그래도 십 년을 같이 산 남편이니까.’ 아무리 철이 없고 이기적이어도, 아내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이제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함께 치료받자고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희미한 기대를 품고 집 도어록을 눌렀다. 띠리링,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을 때 현관에는 낯선 여성용 명품 구두가 놓여 있었다. 붉은색의 아찔한 하이힐.

그리고 거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교태 섞인 웃음소리와 남자의 헐떡이는 숨소리.

서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유, 우리 자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 그 답답하고 촌스러운 윤서진 얼굴만 보다가 자기 보니까 눈이 다 정화되네."

"어머, 민철 씨도 참. 그러다 사모님 일찍 오시면 어쩌려고 그래요?"

"오긴 어딜 와. 그 미련 곰탱이 같은 년, 병원 갔다가 친정 제사 들른다고 밤늦게나 올 텐데. 신경 쓰지 마. 이 집도 조만간 내 명의로 싹 돌려놓을 거니까."

거실 소파 위에서 두 남녀가 엉겨 붙어 있었다. 서진이 피땀 흘려 마련한 소파 위에서, 남편 강민철이 젊은 여자와 함께 있었다.

서진의 손에 들려 있던 진단서 봉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강…… 민철."

서진의 메마른 목소리가 거실을 갈랐다. 소파에서 뒹굴던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강민철은 바지를 추스르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서진의 초라한 행색을 확인하자 뻔뻔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너, 넌 뭐야? 왜 기별도 없이 불쑥 기어들어 와?"

"뭐? 내가…… 내가 왜 들어왔냐고?"

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소파 앞의 탁자를 짚었다. 온몸의 핏줄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네가 사람이야? 내가 어떻게…… 내가 어떻게 번 돈으로 산 집인데, 여기서 다른 년을 끌어들여?"

"말을 참 상스럽게 하네. 이쪽은 우리 회사 신입 직원이야. 업무상 의논할 게 있어서 잠깐 들른 건데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옷을 다 벗고 입을 맞추는 게 업무 의논이야? 이 개자식아!"

서진이 악을 쓰며 탁자 위의 유리잔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유리잔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옷을 챙겨 도망치듯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강민철은 여자를 붙잡지도 못한 채 서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미쳤냐, 이 년이? 어디서 행패야?"

"이혼해. 당장 이혼해! 너한테 들어간 돈, 이 집, 다 토해내고 빈털터리로 나가! 너랑 네 에미까지 간통에 사기로 싹 다 고소할 테니까!"

그때였다. 열려 있던 현관문으로 시어머니 박순임이 들이닥쳤다. 시어머니는 바닥의 유리 파편과 흩어진 옷가지를 보더니, 사태를 파악하고는 오히려 서진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이게 무슨 짓거리야! 집구석 꼴이 왜 이 모양이야?"

"어머니, 저 새끼가…… 당신 아들이 지금 집에서 딴 년이랑 뒹굴고 있었다고요!"

"뭐? 딴 년? 야, 윤서진! 너 말 다 했어?"

박순임은 아들을 나무라기는커녕, 눈을 까뒤집으며 서진의 어깨를 퍽 밀쳤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 보면 밖에서 한눈 좀 팔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집구석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네가 집에서 남편 대접을 깎듯이 해봐라, 남자가 밖으로 도나! 다 네가 못나고 바가지나 긁어대니까 내 아들이 외로워서 그런 거 아니야!"

"뭐, 뭐라고요?"

"네가 애를 낳기를 했냐, 살살 녹는 애교가 있냐? 나무토막처럼 뻣뻣해가지고 돈 좀 번답시고 유세나 떨고! 네 년이 집구석을 삭막하게 만드니까 내 귀한 아들이 숨이 막혀서 그런 거 아니냐고! 네년 탓이야, 다 네년 탓!"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 애를 못 낳은 이유가 누구 때문이었던가. 밤낮없이 일하느라 몸이 망가지고, 스트레스로 유산만 두 번을 겪었다. 남편의 빚을 갚느라 청춘을 다 바친 대가가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닥쳐…… 닥치라고, 이 파렴치한 인간들아!"

서진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명치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맴돌았다. 서진이 피를 토하듯 기침을 뱉어내며 주저앉자, 바닥에 떨어진 병원 봉투가 활짝 벌어졌다.

그 안에서 삐져나온 서류. '위암 3기 진단서', 그리고 그 뒤에 꽂혀 있던 '종신 사망보험 증권'.

강민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박순임 역시 바닥의 서류를 낚아채듯 집어 들더니 눈을 번뜩였다.

"암……? 암 3기라고?"

"야, 민철아. 이거 봐라. 사망 보험금이…… 오억? 수령인이 남편으로 되어 있네?"

순간, 거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모자의 눈빛에 서려 있던 당혹감과 뻔뻔함이 일순간 섬뜩한 탐욕으로 뒤바뀌었다. 서진은 바닥을 기며 서류를 뺏으려 손을 뻗었지만, 강민철이 가차 없이 서진의 손을 발로 짓밟았다.

"윽……!"

"이혼을 하겠다고? 재산 분할에 고소까지 하겠다고 날뛰더니…… 너 어차피 죽을 병 걸렸잖아."

"놔…… 이거 놔, 이 쓰레기 새끼야……!"

"민철아. 이년 살려뒀다간 변호사 선임하고 집 명의도 다 가져가고 보험금도 딴 데로 돌려놓을 거다. 지금 당장 이혼 소송 걸리면 우린 땡전 한 푼 못 건져."

박순임의 눈이 뱀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싱크대로 가더니 서랍 깊숙한 곳에서 투명한 약병을 꺼내 들었다. 시골에서 쥐를 잡을 때 쓰려고 사다 두었던 맹독성 농약이었다. 박순임은 컵에 물을 따르고 그 약물을 아낌없이 들이부었다.

"너, 너희들…… 무슨 짓을……!"

"서진아. 십 년 동안 고생 많았다. 네가 죽어야 나랑 우리 엄마가 사람답게 살아. 편하게 가라, 어?"

강민철이 서진의 팔을 뒤로 꺾어 억누르고, 박순임이 컵을 든 채 다가왔다. 서진은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암으로 쇠약해진 몸은 건장한 남자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읍! 읍……! 놔! 살려…… 읍!"

"꼴에 살겠다고 발버둥은! 얌전히 쳐먹고 뒈져라, 이 독사 같은 년아!"

박순임이 서진의 턱을 억지로 비틀어 벌리고, 맹독이 든 물을 목구멍 안으로 쏟아부었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끔찍한 타는 통증. 내장이 칼로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지옥의 고통이 온몸을 덮쳤다.

"커헉……! 컥, 쿨럭!"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서진은 피를 토하며 온몸을 비틀었다. 시야가 암전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흐려지는 눈앞에서 강민철과 박순임이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위암 말기 환자가 신변을 비관해서 농약 먹고 자살한 거다. 그렇게 진술하면 돼."

"아파트도 내 거, 보험금 오억도 내 거다."

분노. 주체할 수 없는 거대한 증오와 원통함이 서진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착하게 살아서 무엇하나. 남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양보하고, 헌신한 결과가 고작 이 시궁창 같은 배신과 독살이란 말인가.

‘내가……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두 번 다시 착하게 살지 않겠다.’ ‘사랑이고 배려 따위 개나 줘버려라.’ ‘다시 눈을 뜬다면…… 내 앞을 막는 것들은 모조리 때려 부수고, 짓밟고, 몽둥이로 대가리를 깨버릴 것이다……!’

서진의 심장이 멎었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피눈물이 차가운 거실 바닥을 붉게 적셨다.

“헉……!”

숨이 멎었던 폐부로 거대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서진은 번쩍 눈을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내장이 타들어 가던 끔찍한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대신 서늘하고 향긋한 라벤더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뭐지? 병원인가? 살아난 건가?’

서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서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십 년 동안 물마를 날 없이 일하느라 굳은살이 박이고 거칠었던 손이 아니었다. 백옥처럼 희고 매끄러우며, 손가락이 가늘고 길쭉한 완벽한 귀족의 손. 손등 위로 찰랑거리며 흘러내린 머리칼은 눈부시도록 찬란한 은빛이었다.

“아가! 로잘린, 내 딸아! 정신이 들었느냐!”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더니, 거대한 거구의 중년 남성이 울부짖으며 달려왔다.